복직일기, +20일(2022. 3.20)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딱히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달달한 믹스커피보다 블랙이 좋았다. 천성적으로 단맛을 싫어하는 체질 탓이 컸지만 갓 볶은 원두의 빛깔과 향에 반한 것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원두커피의 맛을 알게 된 건 북악 스카이웨이 끝자락에 자리한 드립 커피 전문점에서였으니 아마도 2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대학 초년생 시절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원두커피 전문점(a.k.a 쟈뎅)은 가격과 맛에서 그다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산미 강한 원두를 즐기는 마니아층은 아니다. 난 산미가 옅은 원두를 더 좋아하고 은은한 향을 더 즐긴다. 대단히 민감하고 고급스러운 입맛은 아니지만 나름의 취향은 확고하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전문점 커피를 즐기지 않고 특히 저가의 밍밍한 아메리카노는 질색이다.
어찌어찌하여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원두커피를 내리는 다양한 방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로스팅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고가의 로스터나 에스프레소 머신은 언감생심 꿈꿀 수 없기에 언젠가 생업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를 기약하며 모델이나 가격을 검색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산다.
집 근처에 괜찮은 로스터리 카페를 발견한 건 벌써 15년이 되었다. 좁은 공간에 커다란 로스팅 머신을 들여놓고 핸드드립 커피를 팔던 그 집은 가게 앞에 “바리스타의 집”이라는 입간판과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세워 놓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혜화동 골목에 자리 잡은 그 조그만 가게는 이제 옆 건물로 확장 이전을 하였고 예전 자리는 로스팅 공장으로 변해 있다. 소위 말해 대박이 난 집이다.
그런데 이 로스터리 카페를 제외하고 우리 동네에서 소규모로 원두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중 성공한 곳을 본 적이 없다. 처음 본 집은 아파트 상가에 자리한 1인 카페였다. 꽁지머리를 한 젊은 아저씨가 직접 로스팅을 하며 원두와 커피를 팔았다. 가끔 들를 때마다 아저씨의 로스팅 테크닉 강의를 들으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꽤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버티던 그 집도 3년 전에 문을 닫았고 지금은 샌드위치 가게가 들어왔다.
4~5년 전에는 그 맞은편 작은 상가주택 1층에 빵집과 로스터리 카페가 나란히 들어왔다. 규모는 작았지만 두 곳 모두 직접 원두와 빵을 굽는 남다른 주인들과 빈티지한 인테리어 덕분에 동네에서 꽤 인기 있는 가게들이었다. 특히 로스터리 카페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갓 내린 에스프레소를 작은 유리병에 넣어 팔았는데(일명 에스프레소 샷츠), 집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넉 잔 정도의 아메리카노를 뽑을 수 있어 애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빵집은 지금까지 건재한 반면 카페는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로 바뀐 지 오래다. 맛있는 빵과 커피를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어 좋았는데 생뚱맞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등장은 아쉽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꽤나 두툼하고 어지럽게 생긴 렌즈의 안경을 쓰던 카페 사장님께서 시력 악화로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었다. 에스프레소 샷츠를 구매할 때마다 집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을 친절히 설명해 주던 분이었다.
마지막으로 2년 전, 코로나가 마악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때 동네 초등학교 정문과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기가 막힌 위치의 상가 점포에 산뜻한 인테리어의 디저트 카페가 등장했다. 목 좋은 코너 자리에 둥글고 커다란 전면 창이 눈에 띄는 이곳은 그동안 비싼 임대료 때문에 3~4년 이상을 버티는 가게가 없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빵집이 차례로 폐업했던 이 자리에 젊은 부부가 카페를 차렸을 때 과연 얼마나 버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깔끔하고 따뜻한 인테리어에 다양한 디저트류를 함께 팔아 아이들 등하굣길에 동행하는 엄마들에게 꽤 인기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특히 널찍한 코너 전면 창을 잘 활용하여 때마다 다양한 전시물을 걸어 놓는 사장 부부의 감각이 이채로웠다. 국경일에는 대형 태극기를, 크리스마스에는 알록달록한 대형 트리 장식을 달았다.
로스팅 카페는 아니라 커피 맛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남자 사장이 오토바이로 직접 배달을 하면서 다양한 배달메뉴를 제공하는 등 나름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하는 듯 보였던 이 집마저도 지난주에 폐업하고 말았다.
이 가게의 폐업에 내가 유난히 실망했던 이유는 그 점포자리가 나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온 15년 전부터 눈독을 들였던 그 자리는 우리 아이들이 6년씩 다녔던 초등학교 바로 앞이다. 그 점포 안의 둥근 창 너머로 학교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왁자지껄 하굣길 아이들의 풍경은 언제나 흐뭇했다.
그래서 언젠가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이 점포에 나만의 카페를 차리는 꿈을 꾸곤 했다. 직접 로스팅을 하고 원두를 내려 커피를 만들고 출출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만두와 김밥을 말아주고 싶었다. 꿈같은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상상 만으로 기분전환이 되곤 하였다. 얼마 전 폐업한 마지막 카페의 퇴장은 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듯하였다. 볕 잘 드는 전면 창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마도 이번 생에서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복직을 얼마 남기지 않고 꽤 한가해졌을 때 혜화동 로스터리 카페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끝끝내 수강하지 않았던 이유도 공연히 헛바람이 들어 마음을 다스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쉰이 넘은 이에게는 꿈꿀 자유도 없다. 비현실적인 꿈을 순진하게 꾸기에는 너무 현실적이 되어버린 탓이다.
오늘의 감상,
코로나 처방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아들은 입원 셋째 날부터 열이 내리고 증상이 가라앉았다. 열이 너무 높아 의식이 혼미하여 입원 첫날밤에 화장실에 가려다 넘어졌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때는 정말 병원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느라 밤잠을 설쳤다. 다행히도 7일간의 격리가 해제되는 내일 드디어 퇴원을 한다. 장장 6일간 혼자 입원했던 경험을 아마도 60일 동안은 무용담처럼 떠들어 댈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난 아침 일찍 병원에 간다.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의 이번 생은 축복이다. 잠시 호강에 겨워 배부른 하소연을 한 것 같아 계면쩍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