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MEMENTO MORI 09화

이종사촌형

Memento mori 9

by 낙산우공

나에게는 두 분의 이모님이 계셨다. 이제는 한분만 살아계신다. 내 어머니보다 대여섯 살은 윗 연배의 큰 이모는 올초에 돌아가셨고 지금은 아직 60대이신 젊은(?) 막내 이모만 살아계신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분은 그 젊은 막내 이모보다 불과 한두 살 어린 나의 이종사촌 형이다. 돌아가신 큰 이모의 장남이었고 이모네의 자랑이었던 사촌형님은 지금의 나보다 한 살 적은 쉰에 세상을 떴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 강남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촌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나오며 곧 마흔이 될 나의 건강을 염려하였던 나는 이기적 인간이다. 난 그해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사촌 형은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채 5년을 살지 못했다. 잠깐 완치를 기대하며 일을 손에 잡았으나 얼마 안돼 재발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내려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임종을 앞둔 사촌 형을 직접 찾아가진 않았다. 그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말기암 환자의 외모는 보는 이조차 힘겨울 만큼 앙상하고 초췌하다. 그걸 알았기에 인사를 가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학생이었던 형님과는 각별한 추억을 공유할 기회가 없었기도 했다. 그저 집안 대소사에 모일 때 한 번씩 만나서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내가 사촌 형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건너 들은 이야기들이다. 형님은 짧은 생애에 비해 다사다난한 젊은 날을 보냈다. 그래서 친척들 사이에서 익히 유명하였다.


그 형님은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체구가 왜소했던 큰 이모님 내외와 달리 모든 면에서 훤칠했다. 아래로 내리 네 명의 동생이 있었지만 모두 키가 많이 작았는데 이 형님만 군계일학으로 컸고 용모도 특출 났다. 시골 동네에서는 소문이 날 법도 했다. 게다가 똑똑했다. 공부를 잘했는데 어려운 집안 형편과 큰 이모부의 뜻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1980년대 초에 육사는 서울대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형님은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나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태릉에 있던 육사 교정에서 제복을 입은 사촌 형과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 형님이 군대 체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졸업을 앞둔 육사 4학년 때 대형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주말에 외출을 하면서 친구에게 빌린 오디오 기기를 돌려주지 않고 나왔는데, 그 친구가 도난신고를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도난사건은 사관학교에서 꽤나 큰 징계감이다. 당시에 들은 얘기로는 친구와 오해가 생겨서 벌어진 일이라 형님이 진술만 잘하면 무마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즉, 도둑질할 의도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형님은 훔친 것이 맞다고 진술하여 퇴학을 당했다. 소위 임관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말이다.


이 형님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아마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군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진로에 고민이 많았는데 부모님의 만류로 버티고 있었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주말에 외출을 하면 술에 취해 실수로 우리 집에 전화하는 일이 잦았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외삼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들었다. 그런데 형님은 졸업하고 소위 임관을 하게 되면 자신의 진로는 결정돼버린다는 생각에 아무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친지들은 모두 걱정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런데 그 형님은 퇴학당한 이후로 오히려 밝아졌다. 다시 시험을 쳐서 서울에서 공대로 유명한 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입학을 했고,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현역 복무를 했다. 제대하고 나와서는 너무나 즐겁게 학교에 다녔고, 4년 전액 장학금에, 졸업할 때는 전체 수석으로 총장상까지 받았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준 분이다. 그분에게 유일한 걸림돌은 나이였다. 당시만 해도 신입사원 공채에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덕분에 형님은 중소기업에 다녔지만 오래지 않아 동료들과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한창 벤처붐이 일던 시기였다.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며 강남에 번듯한 집을 장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형님에게 병이 찾아왔고 형님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 형님의 아이들은 고작해야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몇 년 전 친척 결혼식에서 본 형님의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람은 가도 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형님의 젊은 날이 평안했다면 그의 수명이 달라졌을까? 그가 벤처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대장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큰 이모님은 올초에 구순이 다되어 돌아가셨지만 동갑인 큰 이모부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다. 형제들도 모두 건강하다. 가족들과 달리 유독 남다른 외모를 타고났던 형님은 유독 남다른 수명까지 타고났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형님은 쉰이라는 그야말로 한창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빈소에 들렀던 나는 자리가 불편하여 오래지 않아 일어났다.


그때 장례식장 현관 옆에서 담배 한 대를 피던 나의 시야에 큰 이모부님께서 나타나셨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다보는 큰 이모부를 보면서 나는 다가갈 수 없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 순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초점을 잃은 동공과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은 그 뒤로도 잊히지 않았다. 사촌형님이 입관할 때 이모부께서는 넋 잃은 사람처럼 힘없이 이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OO아, 그렇게 쪼끔 살려고 이 세상에 나왔냐? 뭐더러 나왔냐? 그거 쪼끔 살아보려고... 뭐더러.... 이왕 태어났으면 실컷 살아보고 죽어야지... 고것 쪼끔 살고 가려고..."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참척이라 한다. 참혹한 슬픔이라는데 난 도무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나의 이종사촌 형은 나에게 참척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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