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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22. 2022

예쁘다

쉰을 넘어서야 알게 되는 것

'예쁘다'와 '아름답다'는 말이 묘하게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몸소 느끼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을 만큼, 늙어보아야지만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그것을 연륜이라 말하기엔 무언가 다가오지 않는데, 딱히 무어라 말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경험과 지혜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연륜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예쁘다'의 사전적 의미는 세 가지다.

1.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2.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

3. 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아름답다'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1.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둘 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씨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감정에도 쓰인다. 굳이 사전적 의미의 차이를 보자면, '예쁘다'는 말 잘 듣고 행동이 바른 아이에게서 느끼는 흐뭇함이 추가되었다는 것뿐이다. 어감상의 차이는 '아름답다'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할 때 쓰이니 말이다. 어른들께 예의 바른 아이는 예쁜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크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뜻과 용례가 어떻든지 간에 두 단어 모두 매우 긍정적인 표현의 정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런 말을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예쁘다는 말을 남자에게는 잘 쓰지 않는다. 멋지다 혹은 훌륭하다고는 해도 "너는 얼굴도 하는 짓도 참 예쁘다"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난 요즘 '예쁘다'는 말을 남자에게 쓰게 되었다. 물론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말이다.


내가 나이 어린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외모 때문은 아니었고 그저 꾸밈없이 솔직한데 어린 친구답게 호기롭기도 하고, 그러다가 과욕을 부려 일을 망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또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흐뭇함에 겨워 나도 모르게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누군가를 부러움 없이 칭찬할 수 있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오십은...


우연히 스포츠 기사를 검색하다가 1994 통합우승 이후  30 만에 최강의 전력을 드러내고 있는 LG 트윈스의 특급 불펜, 정우영 선수 관련 기사를 게 되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예쁘다' 탄성이 나왔다. 물론  선수는 훌륭한 외모를 가졌다. 다만 내가 그런 이유로 아래 사진에 감동받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프로야구 얘기나 할 거면서 거창하게 서두를 떼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1982년 MBC 청룡 시절부터 골수팬이었던 이들(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라고 짐작되는)만큼은 공감해 주리라 믿는다. 꼭 야구선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저 늙은이가 젊고 패기 넘치고 밝은 친구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늙어서 좋은 것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 Image from 동아일보 기사(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020&aid=000345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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