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장을 만났다

해방일지, +196일(2022.11.22)

by 낙산우공

10여 년 전 한 직장에서 근무하던 동료를 만났다.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7~8년은 족히 넘었으니 서로의 얼굴에 꽤나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겠거니 생각하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예약한 식당에 앉아있던 그를 첫눈에 알아볼 수 없었던 건 단순히 세월 탓이 아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외모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는 표준 키 정도였는데 상대적으로 몸이 과도하게 비대했다.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고도 남을 육중한 몸이었지만, 그렇다고 건강을 크게 걱정해야 할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타고나기를 건장한 체격인데 조금 살이 더 붙은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물론 체중을 조금 빼면 더 건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상생활을 염려해야 할 만큼 비만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의 체격 이야기를 유난스레 하는 이유는 그가 불과 3~4개월 사이에 무려 40킬로그램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당 주인에게 예약자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한 직장에서 지내던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얼굴 피부도 까칠했고 머리숱은 절반 이상이 빠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놀라움을 감추려 애쓰며 그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체중이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더 묻는 것이 그에게는 크게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애써 티를 내지 않고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는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서 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는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어려웠다. 식당이나 카페가 소란스러웠던 것도 한몫 한 듯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내가 기억했던 그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굉장히 스마트한 반면에 매사에 조금 시니컬했던 태도는 여전했다. 아내와 아이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었고 가정에 헌신적인 것도 다름이 없었다.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 퇴근을 하면서도 집에 가서 빨래를 하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그는 지금도 그렇게 산다고 말했다. 밤늦게 찌개를 끓이며 졸다가 냄비를 다 태워먹은 적도 있다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10년 가까이 지나서 만났지만 꼭 얼마 전까지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사람처럼 대화는 편하게 이어졌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나와 대화의 합이 잘 맞는 친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이력이 나와 매우 다른 사람이었지만 한 직장에서 업무 때문에 엮이게 된 나와는 동갑내기였다. 업무상 만났고 직급도 나보다 높았기 때문에 편하게 말을 놓을 순 없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또래끼리만 통하는 것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가 불과 몇 달 만에 몰라보게 달라진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늘의 식사자리에 함께 한 이 중에 7월에 그를 만났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7월까지도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내내 동석했던 사람들과 그의 건강 이야기를 걱정스럽게 나누었다. 무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건강에 위험신호가 켜진 것만큼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얼마 전 나왔고 나도 요 며칠 마음이 무거웠다. 2년 넘게 복용하던 고지혈증 치료제를 끊었더니 불과 두 달 만에 내 몸에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간수치도, 콜레스테롤도, 중성지방도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만성위염에 고혈압, 당뇨 초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먹고 있던 차에 오늘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앙상하게 말라버린 그와의 만남이 내 삶에 던지는 메시지를 떠올리기에는 그의 건강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나는 더 이상 내 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도 나도 이제 고작 만으로 오십이 되었을 뿐이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은 이제 고3 수험생이 된다고 한다. 나의 동갑내기 옛 동료에게 말하지 못했던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힘내라 친구야..."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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