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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08. 2023

외도 그리고 해금강

소망의 등대에 소원을 빌다

해금강이 강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건 1995년 말년휴가를 나와 동기들과 거제여행을 가서였다. 바다의 금강산을 줄여 해금강이라 한다는 걸 몰랐던 그때 누군가 굳이 강을 보러 거제까지 가냐고 궁시렁댔던 기억이 난다. 거제에 가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우리는 비싼 유람선을 타지 않고 해금강이 가장 잘 보이는 산에 올랐다. 그리고는 배를 타지 않기를 잘했다고 우리끼리 좋아했다.


기암괴석의 자연 풍광에 그다지 감동하지 못해서 인지 그 뒤로도 거제를 자주 가보았지만 해금강 유람선을 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외도에 가는 길에 잠시 선상 관광을 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전에 외도로 가는 배편이 형편없어 불쾌한 기억이 남았던 탓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크고 튼튼한 배를 찾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들 녀석이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연신 휴대폰카메라를 들이미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해금강 유람선을 무슨 효도관광 코스인 양 끔찍해했지만 외도 보타니아나 해금강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눈호강을 하며 한 컷이라도 놓칠까 사진을 찍다가 돌아오는 것은 말이다. 나는 아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길래 되려 안심이 되었던지 실컷 눈호강만 했다. 찍어도 다시 꺼내보지 않았을 사진이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해금강과 외도를 돌아보고 선착장에서 돌아갈 배를 기다리던 때…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가로웠던 그 순간 아들은 돌연 눈물을 보였다. 어릴 적 아빠에게 버릇없다고 혼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즐거운 산책길에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결국 나쁜 기억을 소환해 버렸다. 아이는 이내 눈물을 그치고 독일 유학 이야기를 내비치다가 갑자기 검사가 되겠다는 엉뚱한 포부를 밝혔다. 미술을 전공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독일에서 검사를 하겠단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선착장 옆 소망의 등대로 유도했지만 아이의 텐션은 이미 검사가 되고도 남았다. 그렇게 소망의 등대에서 엉뚱한 소원(?)을 빌고 나왔다. 우울증이라는 병의 정체를 나는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병이 발병하는 과정은 유사할지 몰라도 어느 아이에게 어떤 환경에서 발현하느냐에 따라 양상은 판이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내 아이는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부족했다. 그 불신이 대인관계에서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만들어냈고 그 결핍은 허세와 과시욕으로 분출되는 것 같아 늘 걱정이었다. 물론 나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정말 꿈을 이루어낼지도 모른다. 내가 이 아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알 수 없다고 방치하기에는 몇 달째 학교에도 못 가는 아이의 현실이 마음 한구석에 밟힐 뿐이다. 이 병은 매일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나는 객관적인 판단력과 합리적 이성을 상실했다. 자식의 일이란 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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