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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6. 2023

전염된 분노를 다스리는 법

이직하는 동료가 옛 상사의 악취를 전할 때(2022.08.17)

나에게 왜 그러느냐고 되묻는 일만큼은 참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하염없이 내뱉는 분노와 저주의 대상은 그런 꼴을 당해도 충분하게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일이 내게도 힘겹다는 사실을 가끔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풀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을 잊어야 합니다. 그 상처의 원인을 들추어낸들 상처는 덧나거나 더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그 사악한 자의 만행을 폭로하는 일만큼은 조금만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도 그로부터 많은 일을 겪었고 이제 겨우 그 덧난 상처가 아물어가는 중입니다. 두 해를 넘겨서야 겨우겨우 되찾은 평정을 당신은 한방에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셨군요. 물론 당신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어딘가에는 풀고 싶은 응어리를 안고 저를 찾았다는 것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저를 믿고 의지하는 이에게 제가 어떻게 매몰찬 외면의 말을 건넬 수 있겠습니까. 그저 당신과 나의 분노를 공유시켜 준 사악한 이를 탓할 뿐입니다.

이제 당신도 그를 떠나 평정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시는군요.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단히 인내하고 버틴 결과가 나름의 축복이 되었지 않았습니까. 그 자에게 하늘의 벌이 내리길 기대하는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는 바가 있으나 당신은 이미 떠나는 몸, 하찮고 사악한 이의 불행을 기도하는 일에 당신의 체력을 낭비하지 않기를 당부드립니다. 그 몫은 이미 우리가 아니라 하늘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까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당신의 밝은 미래를 꿈꾸는데 시간을 쓰세요. 당신은 할 일을 다했으니 말입니다.

분노는 불길과 같아서 말을 통해 쉽게 전이됩니다. 그리고 맹렬하게 타오릅니다. 당신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단어들은 풀무와 같아서 당신의 분노를 한껏 달아오르게 할 뿐 아니라 제게도 똑같이 전달되더군요. 그리고 내 안의 풀무까지 작동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더군요. 우리 그따위 하찮은 인간에게 아까운 에너지를 소모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둡시다. 당신도 나도 이제 사악한 이를 떠났으니 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더이다. 대저 하늘의 섭리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 인간의 순리가 아니겠는지요.​


욕심도, 죄도, 사망도 인간의 저주로 써먹기엔 한심합니다. 그런 흉한 일에 우리의 입술을 더럽히지 말고, 이제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은 삶을 채우기로 해요. 썩을 년은 때가 되면 썩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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