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May 08. 2023

어버이날의 랩소디

슬픈 50대의 자화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날은 무언가 책무를 해야 하는 날 정도로 인식되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챙겨야 할 대상이 더 늘었다. 그렇게 의무적인 날이었다. 어버이날은.


그런데 쉰둘에 두 아이의 아빠로 맞는 오늘은 유난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어버이면서 아들이고 사위다. 어버이날에 모든 어버이들이 대접을 받는 건 아니다. 난 대접 따위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난 어버이로서 낙제를 받았다. 내 아이가 우울증에 이르도록 아무것도 못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 덕에 자식 노릇도 못하고 있다.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 처가에 인사를 가려했지만 온 집안이 모이는(그래봐야 처남의 세 식구가 추가될 뿐이지만) 떠들썩한 자리를 아이는 힘겨워했다.


사정을 뻔히 아시는 장모님은 우리의 방문을 사양했고 덕분에 3일의 연휴가 한가해졌다.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을 이렇게 아무 일정 없이 보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말이다. 칠순 중반을 넘기신 장인어른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셨고 최근엔 치과치료 때문에 잘 먹지 못해 더 수척해지셨다는 소식을 아내를 통해 들었을 뿐이다.


어제는 남는(?) 시간에 잠시 아파트 옆동에 사시는 어머니댁에 들렀다. 척추 디스크로 오래 고생하신 어머니는 서너 해 전부터 한쪽 다리에 힘을 못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동안 조금씩 악화되었고 이제는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힘드시다. 몇 달 전에는 장탈이 심하게 나서 한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예고 없이 들른 어머니댁에는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 안 사실은 발등이 이유 없이 부어올라 보호사와 함께 동네 한의원에 가셨던 거였고, 나는 부랴부랴 병원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집에 계실 때 챙겨드시라고 사간 소고기와 용돈을 조금 드리고 곧 자리를 떴다. 오랜만에 인사를 온 손주를 붙들고 걱정이 또 한가득이셨다. 그래서 더 오래 있기 불편했다.


2023년의 어버이날은 이렇게 잊기 힘든 날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버이를 대접해 드리지 못했고 어버이로서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낙제생 어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말았다.  삼재의 그림자가 유독 짙고 강렬하게 드리운 날이다. 오늘은.

매거진의 이전글 모자유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