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실에 대한 생각

오구실 시즌4를 기다리며(2017. 6. 9)

by 낙산우공

웹드라마 '오구실 시즌3'이 8편에서 멈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몇 주째 기다리다가 '구실'이란 독특한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순실이, 영실이는 들어보았지만 구실이는 흔하게 쓰는 이름이 아니다. 아마도 주인공 캐릭터를 설명하는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구실'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

2. 예전에 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네이버 국어사전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는 '구실'은 1번의 뜻과 통할 것으로 보인다. '제구실도 못하는 인간', '저놈 커서 사람 구실이나 하려나?'와 같은 표현에서 보면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나는 순간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드라마 속 오구실은 30대 중반의 당당한 싱글 커리어 우먼이다. 그야말로 스스로 자존과 경제적 독립을 쟁취한 이상적인 여성 상일 것이다. 그리하여 제구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오구실에게는 명예로운 명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으로 제 구실하기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88만 원 세대도 모자라 잉여인간이란 말까지 등장하는 하 수상한 시절이다. 이제는 폐기된 옛 국민교육헌장 첫머리에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터무니없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어마어마한 문장이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이 헌장을 외우고 시험을 봐야 했던 나의 동세대 대부분은 이 문장에 큰 시비를 걸지 않았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러나 어릴 적 나는 민족중흥의 뜻을 알게 된 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역사적 사명을 저버릴 수 없는데 과연 내가 어떻게 민족중흥에 일조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내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림 출판사의 문고판 위인전을 섭렵한 당시의 나는 당연히 나도 그중의 한 명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인전 전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해외파 50명, 국내파 50명 정도로 편집된다. 이들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기록문화를 꽃피운 5천 년의 세계 역사 속에서 추려진 인물들이다. 1972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수십만 명의 아이 중 하나였던 내가 이런 거창한 꿈을 꾸게 된 것은 결국 국민교육헌장 덕분이다. 물론 오래 지속된 꿈은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구실은, 제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세뇌되어 왔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몸이 바스러지게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좀 더 몸이 덜 괴로운 밥벌이를, 그리고 좀 더 폼 나는 밥벌이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것이 세계적인 교육 열의 진원지가 되었을 것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에 이런 내용을 본 일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는 정말 평생을 소처럼 일했지만 단 한순간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소판 돈을 훔쳐 가출을 했다고...


놀라운 경제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 세대는 다행히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구실에 대한 강박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란 그저 사회 공동체의 규약을 어기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존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당당한 직업과 경제력으로 무장하고 보란 듯이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낼 이유는 없다. 소득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는 것이고 재산이 없다면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국가가, 사회가 나를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방식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란 없다. 그저 사회가 만들어놓은 편견일 뿐이다.


구실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말 중에 제일 부정적인 게 아마도 '구실아치'가 아닐까? 조선시대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봐주던 향리를 부르던 '구실아치'에는 뭔가 기득권 세력에 빈대 붙어 이익을 챙기는 회색분자의 냄새가 배어 있다. '아치'란 접미사가 붙었다는 사실만으로 부정적 색깔 입히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양아치'란 말을 쓴다. 우리는 구실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존엄을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그래서 탄생을 축복이라 부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착시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