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지선

by 오늘도 나마스떼


타국의 공항에 앉아 나른하게 편지를 읽고 있을 나현 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찍은 여행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현아 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최근 해외여행준비에 한창이라는 것을 말씀드릴게요.


어릴 때부터 온갖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섭렵한 제게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납치, 실종, 조난, 고립과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겁이 많은 탓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가까운 나라 몇 번을 가본 게 전부인데요, 그마저도 항상 집에서 떠날 때면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완벽하게 해놓고는 합니다. 제가 떠난 후 텅 빈 집에 누군가 저의 행방을 찾으러 들어오는 상상 같은 것을 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유난인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비행시간 11시간 정도 걸리는 먼 나라로 나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처음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생각이 아니었지만 항공권을 끊어 놓은 후에 여러 가지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결국은 혼자 여행을 가든지 취소 수수료를 지불하고 가지 않던지 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만 남게 되었는데요, 갑작스레 약속이 취소된 내향인의 전형답게 ‘오히려 좋아! 집이 최고야!’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동안 이 여행 계획에 쏟아부은 에너지와 모처럼 쥐어짠 용기가 아까워 혼자서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진짜 본격적으로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그 과정 중에 하나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문득 이 구절을 읽으니 여행과 요가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가는 여러 종류의 수련 방식이 있고,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 또한 매우 다양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수련자들 중에 상당수가 타인의 감정, 말의 뉘앙스 등을 잘 감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예민하다’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인간에 대한 고찰, 타인에 대한 배려, 끝없는 자기반성 등이 어울려져 만들어진 결과물 같기도 한데요, 모국어를 아주 섬세하게 다루는 일을 하는 작가가 모국어로부터 할퀴어지기도 한다는 것처럼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유형의 사람일수록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생채기가 남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자극으로부터 가끔씩 멀어질 필요가 있는데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는 것이 요가이기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요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혼자만의 추측을 해보았답니다.


요가란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다. (Yoga Chitta Vritti Nirodhah)

요가 경전인 요가수트라 1장 2절, 수련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다능 선생님께서 제게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요즘은 이렇게 ‘여행’이라는 단어에 귀 기울이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일상생활 중 일어나는 대부분 일들을 여행에 빗대어 바라보곤 합니다.


며칠 전 몸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했는데 약간의 이상이 발견되어 ‘수면마취가 필요하나 30분 정도면 끝나는 간단한 내과적 수술’을 권유받게 되었습니다.


30분 정도의 간단한 수술을 여행으로 빗대면 제주도행 국내여행 정도이겠구나, 제주도라면 요가를 수련하러 가끔씩 다녀오기도 하는 곳이니 이 수술을 그 여행처럼 가볍게 받아들여 보기로 하고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한 ‘간단한 수술’은 풍랑 치는 바다를 쪽배로 건너서 제주로도 떠나는 여행과도 같았습니다. 약물에 대한 부작용으로(부작용이라고 느껴지는 증상들을 겪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메슥거리는 속을 붙잡고 마른침만을 연신 삼키며 빙빙 도는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너무 어지러워 눈을 감아도 힘들고 떠도 힘든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대기하다 들어간 수술방은 살이 아리게 추워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고 자신의 치아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듣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간단한 수술’에 이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 어쩐지 창피하게 느껴져서, 특히 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창 수술 준비 중인 간호사분들에게까지 들릴까 봐 더욱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간호사 한분이 제게 호흡을 해야 한다고, 같이 숨을 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해 주셨는데 그 순간 눈앞에 얼마나 많은 회원님들의 모습이 스쳐갔는지 모릅니다. 매 요가 수업에서 제가 그토록 중요성을 강조하고 반복하던 호흡이 이 순간만큼은 얼마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내가 진짜 호흡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던 사람인가 싶더군요.


'몸이 너무 경직되면 굳어서 잠잠해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 발작적으로 움직이게 되기도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혼자서는 절대 조절되지 않는 사지를 수술대에 묶인 채로 역시 회원님들을 떠올렸습니다. 가끔 경직된 신체에 힘을 빼는 법을 알려드리기 위해 다가갔을 때 오히려 몸이 더 경직되기도 하는 회원님들이 계시는데, 내가 왜 그때 발걸음조차 더 사뿐히 조심스럽게 다가가지 못했을까?라는 반성을 마지막 기억으로 마취약을 투여받고 잠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수술이 끝난 후 회복실에서 한 시간 가량의 수면을 더 취한 후에 깨어났는데, 생면부지의 아주머니 간호사분이 제 이마를 쓰다듬어주고 계셨습니다.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지 '드디어 내가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구나.'라는 안도감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의 느낌을 평생 잊지 말고 내가 요가를 나누는 모든 분들에게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요가가 일상에서 떨어져 자신의 내면과 신체를 탐구하는 하나의 여행이라면 나의 핸즈온은 타인의 아사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핸즈온이 아니라, 여행의 끝에 원래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몸과 마음의 느낌에서 찾아오는 안도감 같은 핸즈온이 될 수 있도록 해보자.'


그런 목표를 세우게 되었답니다.


현재는 이 간단하지만, 간단하지만은 않았던 여행의 여독이 남아 있어서 컨디션이 약간 떨어진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요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다음번 편지는 저 멀리 해외에서 바다가 보이는 고대 유적지를 배경으로 요가를 수련하고 있는 사진으로 찾아뵙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꼭 비가 오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번에 나현 님이 요가를 할 때 떠오르는 느낌을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하게 되셨다고 들었는데요, 전에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나현 님으로부터 그때의 느낌들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요가를 할 때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시는 적도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사진 : 이지선 作,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Urdhva Dhanuras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