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
지선 선생님이 여행을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저 또한 마음이 들썩거리면서 다시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매주 다른 지역 혹은 타국으로의 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 요가를 통해서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틀 혹은 사나흘 동안의 외부 자극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흘러넘칠 때면 머리, 어깨 혹은 복부에서 둔통의 신호를 보냅니다. 이는 바로 요가원에 가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알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러 이유로 게으름이라도 피울라치면 몸에서는 귀신같이 신호를 보내 요가원으로 피신을 시키는데요. 이 신호를 몇 번 소홀히 했다가 제대로 응징당해 고생한 뒤로는 만사를 제쳐두고 요가원에 가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홀린 듯이 미술관에 가기 시작했던 때도 피신을 가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두 달 동안 검찰 시보를 했던 시기였어요. 드라마에서만 보던 검사실에 배속되어 피의자를 신문하고, 고소인의 진술을 듣게 되었는데요. 미숙하기만 했던 저는 그 일들이 몹시 부대끼더라고요. 피의자와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진술의 모순을 파악하거나, 피의자의 잘못을 수면 위로 올려 질문하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듯 입에 붙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주도는 현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귀양지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어요. 볕 좋은 날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잔뜩 움츠러든 몸을 이끌고 어디든 숨을 곳을 찾아야 했는데요. 제게는 미술관이 꽤 그럴듯한 피난처가 되었어요.
회칠한 벽면에 덩그러니 놓인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갈 곳 없던 마음이 캔버스 앞에서 비로소 제 속도로 숨을 쉬고, 정주할 곳을 찾은 안도감이 들었어요. 결국은 혼자가 된 작가가 고심하다 결단하듯 그려 올린 선과 면들이 이질적인 공감을 주면서 위로가 되었어요.
그렇게 두 달 동안 열심히 미술관을 다녔고, 육지로 와서도 심호흡이 필요할 때면 미술관을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을 소개해 주어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다른 곳에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우정이 깊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만난 작품들은 제 컨디션에 따라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이야기도 털어놓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즈음부터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명화를 모작했고, 업무가 바빠져 평일에 그림 그리는 게 힘들어지자 주말에 여는 화실을 찾아 그림 그리기를 이어갔어요.
화실을 다니면서부터는 모작보다는 고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 ‘요가’를 주제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중에서 명상을 주제로 그린 그림을 이번에 화실 회원님들과 함께 전시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이번 전시에는 현아 언니와 다능 선생님이 전시회에 찾아와 주셔서 반갑고 감사했어요.
화실에서는 선생님도 있고, 회원님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 고요해진 가운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요. 요가원에서도 그 외형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한 느낌입니다.
소화시키지 못한 외부 자극을 아사나를 통해 침잠시킨 후 이를 해독하여 흡수하거나 외부로 배출하는 과정을 겪는데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게 요가는 유해한 것들을 해독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면, 그림은 유의미한 것들을 흡수하고 구현해 내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사바아사나에 이르면 이미 상당수의 유독성이 해체되어 혼곤한 상태가 되어 있는데요. 이때 지선 선생님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어깨를 흔들면서 마지막 남은 독성까지도 떨쳐내게 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수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듯 요가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제대로 숨을 쉬고, 제대로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 같아요. 이것이 종종 유혹에 빠지면서도 제가 요가와 그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평온과 안식을 구한다면 요가와 그림을 훌륭한 수단의 하나로 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아 언니는 일상의 평온과 안식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하는 것이 별도로 있을까요.
[ 사진, 그림 : 안나현作, Medi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