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는 두 글자, '할 수 있어'라는 네 글자는응원이라는 가면을 쓰고 마음에 큰 상처를 내기도 한다. 아무리 봐도 나쁜 말처럼 보이지 않아도 그렇다.누군가에게 응원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의 뒤에서 그 사람의 성공과 행복을 기원하여 기쁨의 응원을 한다.
때론 반대로 안타깝고 힘든 상황에 처한 이를 위해버티라고,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의 의미에서도 응원을 한다.
하지만 가끔 의도와 달리 이 응원이 누군가에게 부담을 넘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
간신히 악착같이 자리에서,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더 버티라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건 도려 사지로 내모는 건 아닐까? 이것도 못 버티냐며 버텨야 한다고 부담을 더 안겨준다.내가 겪은 응원이란 건 북돋아주는 게 아니라 사지로 몰았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 알았지만, 지금 찾아올 줄은 몰랐던 번아웃.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참에 찾아온 번아웃은 괜스레반가우면서도 미웠다. 겨우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참에, 괜히 맘껏 흔들리라고 놀리는 것 같아서.결국 숨 쉬는 게 버거워져 퇴사를 결정했다.
사실 용기가 없어 퇴사를 선뜻하지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미래만 생각하면 대책 없이퇴사를 하고 싶지 않았고, 돈 때문에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의 퇴사는 어느새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었다. 어느 날은 웃음을 잃었고, 어느 날은 총기를 잃었으며, 어느 날은 시간을 잃었다.
모든 걸 잃어갔던 나는, 스트레스 덩어리 그 자체였으며
보는 이들의 불편함이자 안타까움이 되어갔다. 이 순간조차 수치심이 들었다. 내 몸이, 나의 마음이 아프다는 게 모두에게 들켜버렸고, 들켰다는 것은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모두가 나에게 퇴사를 권했다. 사실 나의 망가짐은 당연한 순리 같은 것이었다. 회사의 이상한 시스템과 말도 안 되는윗선들의 횡포 아닌 횡포에 모두가 이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한편으로 본인에게 프로젝트 관련 일이 넘어올까 봐 두려워했다. 프로젝트를 거의 다 마무리할 때쯤 시기를 보았다. 사실 내 손 하나하나 안 거친 부분이 없었기에 완벽하게 '끝'을 외치고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 나는 이미 재가 되어 없어질 것 같았다. 프로젝트에 계속 함께했던 팀원이 나에게 조심스레 퇴사를 권했다. 나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음에도
숨을 쉬고 싶어서 팀원에게 동의를 구하고 인수인계를 마치고회사를 떠났다. 비겁하고 못났어도 어쩔 수 없다. 난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도망쳤다.
회사를 떠난 지금,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본 과거는 여전히 끔찍했으나,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지쳐서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루라도 모두에게서 잊히고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조금씩 더디지만 회복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나는, 이제 과거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마음의 편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