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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Jun 16. 2021

나만 빼고 다 둘째가 있다.

"긴 바늘이 9에 가면 출발이야."

유치원 등원 첫날이다.

며칠 째 비가 내렸고 오늘도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그저 축축하고 흐리기만 한 날씨이다.




처음인 유치원, 처음인 등하원 차량 탑승...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 참석 없이 선생님과 아이들만 모여

각 반에서 방송으로 입학식을 진행한 후, 오후 4시까지

정상 일과를 진행한다고 한다.

처음 어린이집에 입소했던 2살 아기 때와 어린이집을 옮기게 된 4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하지만 나이를 떠나 처음이라는 것에, 엄마 눈에는 6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품 안의 아기이기에 나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유치원 버스는 잘 타고 가려고 할까?’

‘아는 친구도 몇 명 없는데 엄마 없이 혼자 유치원에 가서 4시까지 있을 수 있을까?’


다행히 재미있고 큰 유치원으로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만 한 아이는 등원 준비도 늦지 않게 잘하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유치원 버스가 정차하는 곳으로 걸어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신이 났다.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엄마와는 달리 여유로워 보이는 아이다.

유치원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는 등원을 위해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원래 친했던 엄마들, 오며 가며 마주쳐 익숙한 얼굴의 엄마들,


나만 빼고 다 둘째가 있다


이윽고 유치원 버스가 오자, 차례로 줄을 선 아이들이 하나 둘 모두 탑승하고 엄마들과 아이들은 유치원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둔 채 서로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이전보다 강한 소리를 내며 출발하려 하자, 두 팔로 큰 하트를 그려주는 딸아이!!

전날 내린 비로 축축한 땅바닥의 습한 기운이 내 눈가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엄마도 더 강해지고 씩씩해질게'를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무조건 둘은 낳을 꺼라며 떠벌리고 다니던 나는 첫 아이 출산 후, 둘째 임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에다 추운 겨울에는 놀이터에 가지 않을 수 있었고,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유산을 겪고 나니 아이를 잃은 그 슬픔 자체도 크지만 이렇게 관계가 엉망이 되어 더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기에는 나는 너무 큰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아이의 유치원 입학식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아이만큼, 아니 그보다도 설레기도 했지만 나만 빼고 둘째가  있는 곳에 매일 아침 나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과 둘째 아이 자는 사이에 혼자 나온 엄마들은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잠시 우두커니 혼자 서 있다가 산책로로 향했다.

일상 대화로 시작해 결국에는 내 아이와 옆집 아이의 비교 혹은 신랑, 시댁 흉 보기로 이어지는 매번 비슷한 패턴의 수다에서 벗어나 이렇게 혼자 여유로이 산책할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유치원 등원 첫날인데.. 오늘의 큰 이벤트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나만 둘째가 없어서 그런가?’


둘째 엄마들은 유치원에 가는 첫째 아이에게도 마음이 가겠지만 지금 옆에 붙어 있는 둘째 아이에게 당연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아이가 '밥은 잘 먹을까, 혹시나 데리러 오라고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또 혼자 미리 걱정이 되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오후 4시가 되어 아침에 아이를 배웅해 주었던 같은 장소로 가서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렸다.


축축했던 땅은 꽤 말라 있었고, 떠나보낸 둘째보다 내 곁에 있는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서 내 눈가도 한결 보송해진 느낌이었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엄마 품에 웃으며 안기는 아이를 더 꽉 안아 주며 또 다짐한다.

엄마도 더 강해지고 씩씩해질게 ♡


내일 아침에는 다른 아기를 보며,

유모차를 보며 울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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