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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Oct 16. 2021

깨진 유리 조각을 모으는 시간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쓰지 않는 삶이었다.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조금 슬픈 일이 있어도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마시고 울며 풀었다.

쓰지 않아도 살아졌다.

2번의 유산을 겪기 전까지의 나는 그랬다.


텅 빈 집안에서 혼자 설거지를 하다 울고, 

아이와 길을 걷다 유모차만 보여도 울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가도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말이 아니라 울음소리였다.


'하나라도 있잖아, 또 가지면 되지.’

지인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도 상처 받았고

내 간절했던 바람이 헛된 욕심, 가벼운 투정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술 취한 사람이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하는 듯,

슬픔에 취한 내가 하는 말이 그저 그런 매번 비슷한 넋두리로 취급되는 것이 싫기도 다.


‘아침 등원 길에 보니 나만 둘째가 없더라.’

‘○○이 엄마는 셋째가 생겼대.’

‘△△이가 잘 지내냐고 묻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나는 시시때때로 있다가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과 미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과 질투 감 등 유치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신랑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출산 휴가도 아닌 유산한 나를 위해 일주일 휴가를 냈던 그는 휴가의 마지막 날, 애도 기간의 종식을 선언했다.


‘우리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 달라질 것도 없고, 이야기하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그렁그렁 눈물 맺힌 그 남자의 눈을 처음 보았기에,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기에...

사랑하는 그를 더 아프게 하기는 싫었다.


'이야기하면 생각난다니, 나는 안 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차이인지, 개인차인지 모를 슬픔을 마주하는 이 자세가 이해 불가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신랑의 말이 맞기도 했다.


달라질 것이 없다.


그는 여전히 설레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사랑을 표현하고 그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려 한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 상실의 슬픔과 고통에 휘청이지 않고, 우리 세 가족의 중심을 잘 잡아주는 그가 참 고맙다.


하지만, 답답한 나의 마음은 어찌하랴!


설거지를 하다 가도, 길을 걷다 가도 울컥하면 휴대폰 메모장에 원망, 분노, 울분, 슬픔 등의 감정을 끄적거렸다. 감정이 몰아칠 때마다 토해냈지만 그뿐이었다. 메모장에 적힌 흩어진 아픔들은 와장창 깨진 유리창 조각 마냥 또다시 내 마음을 콕콕 쑤셔대기에 그것들을 한 덩이로 모으고 싶었다.



이미 끝이 날카롭게 선 유리 조각이지만 모으고 모으다 보면 조금이나마 둥글어지지 않을까. 내 입장과 감정에 치우친 일기가 한 편의 글로 정리되면 내 마음도 정돈되지 않을까. 정리된 슬픔과 정돈된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 이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도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후련하기도 하고 슬픔이 어진 것 같은 날도 있었지만 쓰기 위해 기억을 계속 붙잡고 생각을 오래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쓰지 못한 기간도 꽤 있었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는 은유 작가의 말처럼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둘째 임신’을 준비한 내 선택에는 ‘유산’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가 닥쳤지만 글쓰기와 내 감정은 내가 선택한 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예정일이었던 10월의 어느 날,

                    출산 대신 첫 브런치 북을 출간한 작가 예가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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