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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작가 Oct 27. 2024

뚜이

Tui

  오늘은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서는 날이다. 카민하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강을 배 타고 넘어가거나, 두 발로 다리를 건너서 넘어가는 방법이다. 보통 해안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해안길로 계속 걸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두 발로 걸어서 산티아고 대성당에 입성하기로 약속한 만큼, 국경을 걸어서 넘는 내륙 쪽 길을 선택했다.   

  

우리가 카민하에서 묵었던 숙소에 '파트리샤'라는 호스트는 따뜻한 미소가 인상 깊은 중년의 여자였다. 그녀의 친절한 안내로 머무는 동안 동네의 마트와 식당들을 잘 이용했고, 세탁기 이용법이나 공용주방을 사용하는 법 등등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다. 출발 전날 파트리샤에게 주변 식당을 추천받을 때 그녀가 물었다.     


“초이, 내일 출발하면 어디까지 가나요? 보트를 탈 건가요?”  

   

“아뇨. 걸어서 국경을 넘고 싶어서 이로 가려고요.”  

   

“아! 그럼 화살표를 따라가는 원래 순례길은 경사가 심해서 힘들어요. 국경을 넘는 다리까지 가는 편한 길을 알려줄게요.”      


“와! 딸아이가 발이 아파 힘들어하는데. 편한 길을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파트리샤!”    

 

그녀는 호스텔을 나가서 강가로 내려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줬고, 강을 따라 쭉 걸어서 국경까지 가는 길이 편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말해줬다. 혹시 헷갈릴까 봐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는 친절함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국경을 넘어 이까지 가려면 오늘도 꽤 걸어야 하는 일정이라 유림이의 발 상태가 걱정이었다.      


“엄마, 나 발이 또 아파.”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발이 또 아프다고 했다. 쉬는 동안 소염진통제를 하루 세 번 먹이고, 푹 쉬게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설상가상 유림이가 어제 생리까지 시작했다. 힘들어서였을까? 원래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앞당겨서 시작한 것이다. 발 통증에 생리통까지 겹쳐 컨디션이 좋지 않을 딸이 걱정되었지만, 계속 길바닥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유림아, 엄마 운동화가 좀 더 가벼우니까 바꿔 신자. 그리고, 발이 아프면 중간에 자주 쉬면서 걸어도 돼. 하지만 오늘이 우리 두 발로 국경을 넘기로 한 날이잖아? 조금만 힘내보자.”     


“알겠어. 힘내서 걸어볼게.”    

 

그래도 소염진통제의 효과가 있었나 보다. 나와 운동화를 바꿔 신은 유림이는 걷다 보니 괜찮아지는 것 같다면서 곧잘 걸었다.

파트리샤가 말한 길은 정말 잘 가꿔진 공원처럼 아름답고 경사가 전혀 없는 길이었다. 자전거 길처럼 포장도 잘 되어있었고, 순례자보다는 러닝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길이었다. 발 통증도 잠시 잊힐 정도로 예쁜 풍경과 눈부신 날씨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힘들면 언제라도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이 있어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걸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파트리샤!  


발 통증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놀이도 하며 씩씩하게 걷는 유림이.
파트리샤가 알려준 아름다운 길 덕분에 걷는 동안 즐거웠다.

   



한참 걷다 보니 한 마을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도시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포르투갈의 국경마을인 '발렌사'였다. 강 하나를 사이에 끼고 있는 양쪽 국경마을엔 관광객도 많고, 머무는 순례자도 많다고 들었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넘쳐났고,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소품들이 가득한 가게들도 많았다. 아픈 발로 걷느라 지친 우리는 맛있는 간식과 시원한 슬러시를 사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마 이에 미리 숙소를 잡아놓지 않았다면 발렌사에 그대로 눌러앉았을 것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마을이었다. 우린 잠시 아름다운 도시를 즐긴 후 계속 이어 걸었다.


유림이는 발렌사에서 먹었던 슬러시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한다.


드디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 표시가 되어있는 철제다리에 올랐다. 좀 더 걸어가니 다리 중간에 흐릿한 글씨와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한 발자국 이면 넘어가는 이것이 국경선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갈 수 없는 분단국가에서 살다 보니, 여권 한번 체크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걸어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유림아, 여기가 국경인가 봐. 정말 일초 만에 두 나라를 오갈 수 있네. 신기하다. 너도 건너봐.”     


“포르투갈! 스페인! 포르투갈! 스페인!”     


우림이가 국경선을 고무줄 놀이 하듯 폴짝폴짝 뛰어넘기를 반복했다. 국경을 넘는 걸 영상으로 남기려고 핸드폰으로 촬영을 했는데, 그 영상 속 유림이의 발은 통증 따위 전혀 없는 듯 가벼워 보였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강 하나 건너 오니 한 시간이 훅 넘어가있었다. 뭔가 한 시간 손해 본 느낌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즐겁게 느껴질 만큼 설레었다. 우린 28km 정도를 걸어 스페인 국경마을인 투이에 도착했다. 이는 발렌사만큼이나 활기차고 예쁜 마을이었다. 그래서 유림이의 발 상태로는 내일 바로 출발하는 건 무리일 듯하다는 핑계를 대고 하루 더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에 클럽이 있었나 보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까지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둥둥 거리는 우퍼스피커의 진동까지 느껴져서 잠을 설쳤다. 클럽이 문을 닫고 조용해지고 나서야 편안히 잠을 좀 잘 수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우리 방은 네 명이 쓰는 다인실이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옆 침대에서 자던 남자순례자가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그 소리에 또 잠을 설치다가 아침 열 시가 되어서야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하지만 이 여유도 오늘로써 끝이다. 앞으로의 일정 중에 이제 휴식데이는 없다. 유림이의 발 통증으로 일정이 꽤 늦어졌다. 이제부터는 매일 순례길을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오늘 잘 쉬어야 했다. 소염진통제도 잘 챙겨 먹었다. 다 먹어가는 소염진통제를 근처 약국에 가서 새로 구입했다. 지금까지 아픈 발로 잘 걸어준 유림이에게 고맙고, 내일부터 또 그 발로 걸어야 하는 것이 걱정스럽다. 부디 오늘의 휴식과 소염진통제가 효과를 발휘해서, 내일 걸을 때 통증이 없기만을 바라본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걸어서 들어가던 순간.
강을 건너오니 신기하게도 동글동글한 포르투갈 돌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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