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은 포르투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우린 긴 비행으로 힘들고 지쳤다. 우선 예약한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숙소 근처 골목을 몇 번이고 헤맨 후에야 아주 작은 간판이 숨어있듯 붙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길쭉한 빨간색 문은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안에서 직원이 문을 열어줬다.
‘아니, 어서옵쇼~ 는 못할망정 찾기라도 쉽게 해 놔야지, 눈 나쁘면 찾지도 못할 눈곱만 한 간판에다, 안에서 꼭꼭 걸어 잠근 문은 또 모야?’
나는 지금까지 여행에서 거의 호텔을 이용했기에 호스텔의 시스템을 잘 몰랐다. 그래서 찾아오기 힘든 숙소 때문에 속으로 엄청 투덜거리고 있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힘들었던 것이 짜증이 더해진 이유이기도 했다.
“당신과 친구 분의 여권을 보여주세요.”
그녀는 구석에 놓인 소파 위에 지쳐 쓰러져 있는 유림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체크인을 담당한 여직원은 나와 비슷한 또래 정도로 보였고, 웃음기 없는 얼굴 때문인지, 밝은 머리 색깔에도 불구하고 뭔가 어두워 보이는 이미지였다. 딱딱한 말투도 내 느낌이 맞았음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저랑 제 딸이에요.”
“아~ 뭐, 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하하하!”
그 순간 활짝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웃을 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두 눈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유림이는 중학교 2학년이다. 나보다 키는 훨씬 컸지만,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 친구로 오해받은 적은 없었는데. 서양사람이라 동양인의 얼굴 구분이 잘 안 되나 보다. 나야 기분 좋은 오해였다지만, 그걸 옆에서 들은 유림이는 나중에 방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 라며 엄청 기분 나빠했다.
“방 청소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나요?”
“여긴 호텔이 아니에요. 방 청소는 따로 없어요.”
그녀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와 딱딱하게 말했다.
3일간 머물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할 예정이라 방청소 시간을 물어본 건데, 청소는 고사하고 수건도 처음 제공되는 두 장이 전부라고 했다. 그리고는 카드키 두 개를 주며 간단한 사용법을 설명했고, 배정된 방은 4층이라고 알려주었다. 로비 위층부터 일층으로 시작하는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힘겹게 올라온 방에도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정말 침대와 조명이 전부인 방. 공용욕실을 사용해야 했고, 냉장고도 없어서 맥주를 사다 놓고 시원하게 먹을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호스텔이란 이런 거구나.’ 유럽에 온 신고식을 치른 듯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도우로 강은 주변에 빼곡한 주황색 지붕들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그 풍경에 취해 우린 다른 불편함은 다 잊기로 했다.
우리방 창문을 열고 찍은 도우로 강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방문하게 되는 장소에서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쎄요(순례길 도장)를 받아야 한다. 그 도장이 내가 착실하게 길을 잘 걸어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크레덴시알은 포르투 대성당에서 구입 가능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우린 먼저 크레덴시알을 구매하러 다녀오기로 하고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다시 내려와 호스텔을 나섰다.
포르투 대성당은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있었다. 대성당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시끄럽거나 소란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다들 편안해 보였고 성당 품 안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성당과 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분위기였다.
“유림아, 여기 정말 멋지다.”
“응. 그러네. 크레덴시알은 어디서 사는 거야? 그것만 사면 바로 저녁 먹고 숙소로 들어갈 거지?”
영혼 없음. 관심 없음. 계속 걷는 거 싫음.
나만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딸은 어서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다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휴~ 이런 아이와 정말 산티아고까지 걸을 수 있을까?
아직 순례길에 올라서지도 못했는데, 난 딸아이를 데리고 여기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