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책방의 이사 일기

책이 다치지 않게 보금자리를 옮기는 방법

by 별방구

계동길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별방구는 올해 2월 종로 4가와 을지로 사이에 위치한 세운대림상가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여정이 설레는 한편으로,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걸까. 1월이 되어서도 이사를 준비하거나 정리할 채비가 영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1월 19일, 계동길에서의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다음 주 수요일이 되어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책방 이사까지 D-5. 책방지기가 처음이었기에, 책방의 이사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모르면 용감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초조함을 느끼기보다 나름의 계획대로 찬찬히 이사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나는 두려움 없이 책을 상자에 담고, 물건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책방 이사 시 유의할 점

1. 책이 다치지 않아야 한다.

2. 최대한 간결하게 짐을 싸야 한다.

3. 가구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아무것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책은 너무도 여리고 취약한 것이라서 쉽게 다치고 손상된다. 거칠고 험한 이사의 여정을 견디기에 책은 최악의 조건을 갖춘 물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어차피 이 책은 옮겨질 운명. 나는 야무지게 책을 포장해서 끝내 야무지게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갈 준비를 마쳤다. 나머지의 물건들은 플리마켓을 했던 요령과 나름의 살림력으로 요리조리 잘 담아냈다.

가장 마지막에 담으려고 조금 남겨둔 자잘한 것들을 이삿날 아침에 마저 담다 보니 꽤 여유 있게 샀다고 생각했던 이사 박스가 어느새 모두 동이 났다. 트럭에 실기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반. 주말이라 우체국도 닫았고, 다이소는 너무 멀다. 바깥을 살펴봐도 깨끗한 이 골목에 버려진 박스가 보일 턱이 없지. 고민 끝에 200m 거리에 있는 수연 홈 마트에 가보기로 했다. 마트니까,, 뭔가 남는 박스가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마트에 도착해서 재빠르게 레이저를 켜고 살피니 빈 박스가 상당히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사장님께 다가가 혹시 빈 박스 몇 개만 나눠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휴~ 다행이다!”를 외치며, 이마에 흐를까 말까 하는 땀을 시원하게 닦아준 뒤 박스를 챙겨 다시 계동길 끝자락의 언덕을 올랐다.


챙겨 온 소주 박스에 남은 짐을 넣으니 아주 깔끔하고, 완벽하게 이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트럭에 실어서 새로운 공간에 내려두기. 트럭을 기다리며, 잠시 남은 시간 동안 햇살을 느끼며 이곳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다. 어쩐지 모든 것을 사각의 박스 속에 담아내서인지, 이제 아쉬움보단 후련함이 더 커져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쓸 시간이다-.-!

그리고 2시. 야무지게 목장갑을 두 손에 끼운다. 이제 힘을 낼 시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의 1층이라 입구에 트럭을 세워두고 짐을 실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4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었는데도 막상 모든 짐과 가구를 트럭에 실으니 상당했다. 그래도 테트리스처럼 구석구석 빈틈을 메우며 박스와 가구들을 끼웠더니 1톤 트럭에 모든 게 실어졌다. 짐을 막 실기 시작할 때는 생각보다 짐이 많아 트럭에 모든 것이 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은 김칫국이었다.

공간에 있던 모든 짐을 트럭 위에 올려둔 채, 텅 빈 계동길의 별방구를 보니 분명 2년 전 이곳을 볼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화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똑같이 하얗고, 텅 빈 공간으로 남겨졌으나 그곳을 바라보는 나는 완전히 다른, 그러니까 어엿한 책방지기이자 청년 사장, 그리고 23살의 소상공인으로 서있게 된 것이다.

실상은 짐을 나르고 싣느라 지친 모습

우리의 공간을 그대로 트럭에 실은 채로 트럭 앞자리에 앉아 달리는 도심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이 된 것도 같았다. 나의 성이자 요새인 ‘별방구’의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움직이니 듬직함이랄까, 두려움이랄까 그런 무게감이 어깨 위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참이었다.


짐을 실을 때는 수월한 듯했으나 문제는 내려서 옮기는 것. 을지로의 별방구는 대림상가의 4층에 위치해 있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짐과 가구의 가짓수가 많아 생각보다 더 여러 번 오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2대지만 화물용은 1대이며, 총 12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상가의 엘리베이터의 삶은 조금도 쉴틈이 없기에 우리는 계속 더 서둘러야 했다. 모든 짐을 일단 새로운 공간에 때려 넣다시피 밀어 넣고 나니 순식간에 온몸의 피로감이 찾아왔다. 자갈밭은 마구 구른 느낌으로 사방이 아프고 묵직한 피로감이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정리를 해나갔다. 가구들이 이리 두었다가 저리 두었다가 하며, 구조를 잡으며 박스들을 풀었다. 서가에 책을 꽂기 위해 우선 책장의 위치를 정하는 게 중요했기에 섣불리 책들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이틀을 보내고는 이러다간 다음 달에나 책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아 그냥 일단 풀자며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은 것에 비해 실행력과 움직임이 느리기에 짐을 모두 풀고 정리하는데 무려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빨리를 외치며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이럴 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난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으니, 여유가 담긴 준비자세라고 해두겠다.


그리고 야심 차게 오픈을 이틀 남겨둔 날.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별방구의 모든 것을 적셔버린 문제의 사건은 바로,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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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