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방구, 작은 책방의 시작
일단 해보자. 후회도 실패도 내 몫이니까.
2023년 1월, 계동길 끝자락에 아주 작은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길고 긴 언덕길의 끝에 위치한 그곳은 계단 한 칸을 내려가는 0.5층에 층고가 낮아 온도가 조금 서늘했다. 온 사방이 하얀 그곳은 마치 내게 도화지처럼 느껴졌다. 나의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도화지.
처음 목적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린 그림들로 하나씩 제작한 디자인 문구를 바탕으로 작은 아지트 겸 나만의 스튜디오를 꾸리기 위해 출발한 공간이었다. 화려하거나 우렁찬 곳이 되기보다는 하나씩 나만의 색깔로 채워가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산책 코스였던 계동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작은 공간이 더욱 마음에 쏙 들어왔다. 처음엔 소박하게 테이블 하나에 진열대 두 개, 의자 네 개를 둔 채 여백의 미를 추구하는 공간에서 차츰 무지갯빛 온실 같은 공간으로 채워져 나갔다.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산책할 땐 서점에 가곤 하던 우리 집의 책장에는 엄마가 애정하는 시집들이 가득했다. 하루는 그중 엄마의 베스트 애착 시집 4권을 챙겨서 별방구에 가져갔다. 그땐 단지 내가 좋아하는 ‘책’ 또한 나의 일부이기에 그곳에 나의 색깔을 한층 더 칠하기 위해 가져간 것으로, 판매용이 아닌 전시용이었다. 그러다 점점 한 권씩 한 권씩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계속 가져오다 보니 어느새 책장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채워진 별방구는 작은 책방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몰래 품어 온 책방 사장의 꿈이 그렇게, 갑자기 이뤄진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의 처음 목표가 책방은 아니었으나 책방이 되어감으로써 나의 공간이 온전해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나를 표현하고자 했던 한 아이는 자라 책방지기가 되었다. 늘 불안한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그 마음은 점점 형태를 만들어가더니 끝내 별방구라는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계동길 끝자락에서 시작한 4평 남짓의 그 작은 공간은, 지금 을지로에서 조금 넓은 10평이 되어 여전히 작은 책방이자 나만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나처럼 불안과 생각이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이 공간이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줄 수 있길 바라며, 여전히 채워나가고 있다. 일상과 이상,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찰나의 순간을 담은 공간, 별방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