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걷기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니, 내가 틀어놓고 나간 영어 동영상이 여전히 열일하며 화면 속에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거실에서 묵묵히 돌아가고 있는 그 영상의 고요함을 깨트리며, 딸에게 물었다.
"아침 먹을 거야?"
수아는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안 먹어."
오케이, 아주 간단한 아침. 나만의 밥상을 차려서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완료, 완벽하게 정리된 싱크대를 바라보며 살짝 뿌듯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딱 그 순간.
"엄마, 배 아파..."
수아가 거실 한구석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어제부터 시작된 생리 때문인지 배가 아프단다. 약을 먹겠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마음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왜냐고? 약은 빈속에 먹으면 안 되니까, 또 아침을 차려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진짜... 나한테 아침 시간을 허락해주는 날은 없는 거야?" 속으로 혼잣말을 던지며 다시 주방 쪽을 바라봤다. 설거지까지 싹 끝내놓고 반짝이는 싱크대를 보니, 정말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을 안 먹일 수도 없고... 이 귀찮음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바라보며, 내 마음은 이미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수아는 눈치가 백 단이다. 내 얼굴에 귀찮음과 짜증이 잔뜩 묻어 있다는 걸 느꼈는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나 학교 가서 에너지바 먹고 약 먹을게."
아차! 순간 미안함이 나를 덮쳤다. 내 속 좁은 성질머리가 여기까지 온 건가 싶었다. 그래, 에너지바에 약이라니.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나는 다시 혼잣말을 한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라니, 그게 인생의 묘미라고 누가 그랬을까? 묘미는 무슨. 그놈의 계획도, 인생도 오늘은 다 귀찮기만 하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진짜 엄마가 맞긴 맞나? 이렇게 들쑥날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엄마라는 역할을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나도 사람이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거겠지. 들쑥날쑥이 인생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결국 엄마의 몫인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