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보다 침묵
오후 연수가 있는 날 아침, 나는 수아가 먹을 아침 겸 점심을 준비했다.
에어프라이어에 등갈비를 몇 분 데우면 되는지, 준비 과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수아는 익숙한 듯 "걱정 마, 잘 챙겨 먹을게"라고 대답했다.
혼자 밥 챙겨 먹는 것에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수아를 믿으며 나는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3월이 되면 중학생이 되는 수아는 예비소집일에 받아온 교과서를 읽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득 교과서가 잘 읽히는지 궁금해져 물어보니 수아는 "영어는 조금 어려운데 국어, 과학, 사회는 잘 읽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문득 확인하고 싶어졌다. 과연 교과서를 정말 읽었을까? 조심스레 교과서를 펼쳐보았다. 그러나 책에는 펴본 흔적조차 없었다.
그 순간, 수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척하며 책장을 스르륵 넘기는 시늉만 했다.
아침부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또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해줄 수 없는 일에 대해 꾸짖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도, 억지로 교과서를 읽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론, 침묵이 최선일 때도 있다.
집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수아도 내가 거짓말을 알아챘을 거라는 걸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엄마와 딸 사이이기도 하고, 나의 감정선도 눈치 빠른 수아가 이미 읽어냈을 것이다.
‘엄마가 화내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았겠지.’
‘ 거짓말했다고 실망했을까?’
수아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은 중학생이 되기를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교과서의 무게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수아의 마음을 모른 척해주었다.
나의 모른 척이 수아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다.
엄마는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거짓말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꺼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수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미션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수아가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 사실은 말이야...” 하고 솔직히 털어놓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때는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사실, 엄마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거짓말한 거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같은 말은 내 입에서 나올 수 없다. 그런 말은 책에나 나오는 내용일 뿐, 현실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오히려 침묵이 더 편한 쪽이다.
솔직함을 고맙다고 표현하기엔 여전히 거짓말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숨기며 멋진 대사를 할 자신이 없다. 나는 현실적인 엄마일 뿐이다.
그렇지만 수아가 솔직해지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언젠가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쓰며 내가 앞으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