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딸아이와 남편이 동시에 외쳐대는 “배고프다”는 울부짖음. 그 말은 하루 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나에게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또 다른 의무와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그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짜증이 먼저 치밀곤 했다. 어쩌면 그 순간의 나는 ‘돌봄을 주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듯한 외로움 속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나는 늘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으로만 머물러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를 돌봐줄 사람은 누구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며들곤 한다.
결혼 15년 차, 돌아보면 나는 늘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나를 위로했는지, 제대로 밥을 차려 챙겨 먹은 적이 언제였는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나를 위한 돌봄이라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대충 때워 먹은 밥 한 끼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애써온 시간이 분명 소중했음에도 정작 내 자리를 비워둔 채 흘려보낸 세월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채움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천천히 나를 채워가려 한다.
아이 덕분에 이런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내가 긴 세월을 쏟아 아이를 성장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게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곧 아이가 자라났다는 증거이기에, 그 점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그리고 이 감사함은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성장하며 비워진 자리를 외로움으로 두지 않기 위해, 나는 이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나를 채워가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잃지 않고, 나로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쌓여, 내가 다시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낼 힘이 되리라 믿는다. 돌봄만으로 버텨온 시간이 아닌, 나 자신을 돌본 시간으로 인해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아이와 남편 곁에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여유와 감사가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따스하게 밝혀줄 것임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