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나는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잠시의 여유를 두며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왔다.
“오늘은 안 되지만 이틀 뒤에 사줄게”라든지,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줄게” 같은 약속으로 아이는 기다림을 조금씩 경험해갔다.
물론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울고 떼를 쓰며 원하는 것을 당장 얻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내 반응에 익숙해졌는지 예전처럼 조르거나 떼를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 기다림을 조금은 배워가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은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기다림은 단 하루아침에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기다림을 가르치는 일은 결국 나에게도 배움이었다. 아이가 울 때 참아내며 곁을 지키는 과정, 그 시간들 또한 나의 기다림의 연습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기다림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늦게 얻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태도라는 것을.
이제 나는 또 다른 기다림 속에 있다. 영어 시험지를 백지로 내지 않는 날을, 언젠가 스스로 공부를 시작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시간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복잡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채찍질한다고 해서 아이가 곧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성장은 결국 아이 스스로의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아이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또한 함께 성장해야 함을 깨닫는다. 어쩌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보다 나의 성장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기다림 속에서 멈춰 서 있기보다, 나 역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사실 아이를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오지 않는 버스를 사막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더 고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된 기다림 속에서도 내가 배운 것은 분명하다. 기다림은 아이를 위한 시간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키워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성장할 나와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