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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1주기와 혐오표현

250416

by StarCluster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되었구나.”


학생들에게 11년 전에 몇 살이었냐 물어보니 아이들은 4살쯤이라 했다.

“해마다 들었을테지만-” 하고 운을 띄우며,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다른 선생님들하고 학교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 그런데 들리는 말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배가 뒤집혔다는 거야. 그런데 또 뉴스에서는 전원 구조가 됐대.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싶으면서도 너무 다행이다 싶었어. 그렇게 오후 수업에 들어갔고,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됐어. 그게 오보, 그러니까 잘못된 뉴스를 내보냈다는 걸.”




이야기하며 그 때를 떠올렸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생존자들의 끔찍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었고, 죄책감마저 따라 붙어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도 현장과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섰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슬픔을 나누고 위로했다. 애도의 감정이, 너무도 큰 슬픔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TV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너무 슬퍼 자꾸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그해 6월. 출근 준비를 하던 아침이 기억이 난다. 정확한 멘트가 기억나진 않지만,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참사 71일째입니다.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들이 치유 프로그램 등을 병행하며 일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첫발을 뗐습니다.” 교문 앞에서 돌아오지 못한 친구의 부모님을 마주한 학생들은 “죄송합니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희생자 학부모님들은 그런 학생들에게 “돌아와주어 고맙다”며 손을 잡고, 안아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꾹 참아보아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 시기에 느꼈던 분노의 감정도 떠올랐다. 당시 한 학생 대표는 트라우마와 지나친 관심에 힘듦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고를 회상하게 하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며, SNS와 메신저를 통해 ‘너만 살아 나와서 좋으냐’, ‘어떻게 친구를 배신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일도 있었다. 팽목항 구조 현장, 모두가 무거운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그곳에서 벌어진 혐오 사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하며 유가족들을 조롱한 일이 있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이 물에 불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을 악의적으로 빗대어 ’어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심지어 어묵을 먹는 사진을 올리거나, 팽목항까지 가서 유가족들 앞에서 어묵을 먹는 행위를 하며 그들을 조롱했다.


이것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극단적인 모욕이었고, 큰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들과 유가족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실제로 ’어묵‘ 비하 게시물을 올린 일부 일베 회원들은 모욕 혐의로 고소되었으며,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극소수의 혐오 세력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단순한 악플을 넘어선, 중대한 범죄 행위였다.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에 대해 더욱 엄중히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숙한 시민 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시간이었다.




매년 학교 현장의 웃음과 대화, 소음 속에서 간간히 그 커뮤니티의 혐오 표현들이 들린다.


지긋지긋하여 이제는 사라지기를 바라는 말들이 어떻게든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표현들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에 관심조차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득한다.


너희의 본심이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을 지금 멈추어야 한다고.




세월호 참사는 이제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우리가 여전히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전 불감증과 재난 상황 속 보고와 구조 체계의 실패에 대해서.


그때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간절히 부탁했었다.


2014년 4월 16일을 결코 잊지 말아달라는 그 말과

그날 있었던 일들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도 서로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있다.


단지 슬픔을 잊지 않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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