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을 받는다면 감옥에서 10년을 사시겠습니까?
시대의 변화는 점점 가속이 붙은 페달처럼 빠르게 달려온다. 교과서에는 지금을 사는 대중들과의 감정에 맞지 않는 사례나 내용이 실려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버려서 현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설문 및 조사 결과들도 있다. 이런 내용들이 교육과정의 개정에 맞추어져 바뀌곤 한다. 이번 2022개정 교육과정의 적용시기에 따라 도덕2 교과서도 내년이면 바뀌게 된다. 그래서 미래엔 2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위의 조사 결과도 이제는 지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인상깊은 질문들이 교과서에 나온다.
1.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것인가?
2.뇌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용할 것인가?
3.나를 더 잘 살게 해 준다면 지도자들의 불법 행위를 눈감아 줄 것인가?
행정안전부의 지원으로 한국 투명성 기구에서 2001년부터 2008년 까지 총 7회 실시된 정직지수 조사였는데, 고등학생의 56%, 중학생의 39%, 초등학생의 17%가 "10억을 받는 대신 10년간 감옥에 가겠다"고 응답했다. 찾아보니 이후에 비슷한 조사연구는 더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결과다.
표면적으로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성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죄와 처벌, 돈과 윤리에 대한 사회의 가치 판단이 녹아 있다. 수업에서 이 내용을 다루다보면 아이들의 반응이 다양한 편이다. 물론 자신이 감옥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젓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 질문을 마치 투자 수익을 따지는 경제 문제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수감 생활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알지는 못하더라도, "10년 고생하고 10억이면 괜찮지 않아요? 연봉 1억인 거잖아요."라는 식의 반응이 곧잘 나온다. 이는 단지 물질에 매몰된 태도를 넘어, 죄라는 개념을 손익계산으로 환산하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죄는 단순히 감옥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벌'로만 환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죄'라고 규정한 것들에는 언제나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있고, 그 피해자의 고통은 죄지은 사람이 갇혀 있어야 하는 10년의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깊게 남는다. 감옥에서의 10년은 가해자의 시간이지만, 피해자의 상처는 그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인생에 새겨지는 고통인 것이다.
도덕, 윤리란 결국 공감과 상상력의 문제다. 이 설문이 묻지 않은 중요한 질문은 "그 죄로 인해 누가 고통받는가?"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 질문을 떠올리지 못한 채 쉽게 대답한다. 그건 그들이 이 때묻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른들을 바라보며 물들었기 때문이라기 보다, 아직 그런 상상과 공감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리적인 판단은 규칙 암기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공감이 없는 정의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 없는 윤리는 어떤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교과서의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아이들에게 전달할지, 또 어떤 가치와 태도를 함께 키워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과 윤리적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을 구상하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주고자 질문을 이어갔다.
"만약— 저지른 그 죄로 인해 누군가가 분한 마음으로 울고 있다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잘 수가 없고, 가슴만 부여잡고 살게 된다면, 너희의 마음은 어떨 것 같아?"
이어서 더 깊게 물어보았다.
"한편으로 그 피해자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너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들의 웃는 얼굴 뒤에 있던 진지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 피해자가 내 형제라면.', '그런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일이 우리 부모님에게 일어났다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아이들의 눈빛이 바뀐다.
가벼운 웃음 속에서 시작된 대화는 생각이 머무는 침묵으로 이어진다. 사회 정의를 다루는 교과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었기에, 이내 곧 수업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렇지만 그 순간부터 아이들의 고민이, 도덕적 인격을 길러가는 목적으로서의 교육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10억을 받고 감옥에 간다.’는 선택은 단순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에는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양심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명확한 정답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공감하기 위해, 멈추고 상상하며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자료
- 도덕2 미래엔 교과서
- 제13차 IACC회의 출장보고서. 2008. '2008년도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YII) 조사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