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5
졸업한 학생에게 반가운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서로 잘 지내고 있는지, 건강한지, 소소한 행복을 잘 챙겨가며 살고 있는지 가볍게 안부를 확인하며 안녕을 기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은 편지 같은 장문의 문자를 주고 받거나, 만나서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고민들을 품고 있다가, 말씀드려도 괜찮을지를 생각하면서 결국 꺼내놓기도 한다.
"제가 진학하려는 방향이 맞는지 불안해요."
비슷한 시기에 다른 아이도 비슷한 결이 담긴 이야기를 했다.
"여기까지의 선택을 후회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많이 생각해본들, 진로진학의 문제는 성인이 되어가는 학생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도 같이 한숨을 쉬며, 섣부른 조언보다는 '그 자체로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공감을 먼저 건네본다. 이미 많고 많은 선택지 사이를 헤매다 온 아이들의 머릿속이 정돈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져본다. 다른 시기, 각각 다른 아이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세부 내용은 다를지언정, 결국 우리는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고, 또 걷지 않은 길을 어떻게든 후회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불안하고 힘들지, 그런데 선생님도 그래왔고, 사실 지금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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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포함하여 하루에 35,000가지가 넘는 선택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선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어떤 것들은 '습관'이나 '루틴'으로 만들고, 생각하기를 생략해버리기도 한다. 이는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회피하는 나태함으로 비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아껴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려는 지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씩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 하나의 방향을 향해 가는 많고 많은 선택지 속에서 우리는 흔히 혼란과 불안을 느끼곤 한다. '과연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걸까?’라는 의문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또한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까?'라는 후회는 우리를 계속해서 힘들게 한다.
이러한 선택의 어려움은 '포보(FOBO, Fear of Better Options)'라는 심리 현상과 관련이 있다. 포보는 더 나은 선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결정을 망설이거나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모든 선택지가 가져올 결과를 미리, 그리고 모조리 알고 있어야만 안심이 되는 듯, 우리는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애쓴다.
완벽한 선택에 대한 강박은 무한 경쟁의 시대,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끝없이 뒤처질 것 같은 공포감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최적의 선택들을 누적시켜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고 싶다는 허영심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서 최적의 판단을 해 나가는 '회귀', '귀환' 등의 키워드를 가진 드라마, 소설, 웹툰과 같은 서브컬처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삶에 그러한 기연(奇緣)은 없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고,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우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수많은 사실들 속에 잠겨간다. 처음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도 우리를 비집고 들어와 어느새 정신이 팔려 있게 되고, 또 갈증처럼 허전한 마음에 스스로 더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들이 생겨나고 있다. 학생들이 고려해볼 수 있는 진로진학과 관련된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전에 비해 더욱 자유롭게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일단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것 같던 여러 선택지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다. 우리는 택하지 않은 선택지들이 미래에 가져다 줄 ―이미 선택했다면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를― 이익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후회한다. 스스로를 예속시키는 셈이다.
결정을 계속해서 미루거나 심지어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포기해야 할 여러 가능성 또한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는 풍족함 속에서 더 고통스러워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목도하면 할수록 거기에 압도되어 짓눌리는 우리들을 본다. 포보를 통해 가장 완벽한 길, 어떤 실패도 없는 길, 내 가능성의 효율을 극대화한 길, 내 인생의 최적의 길로만 가는 것은 절대자적인 관점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무한한 가능성의 편린을 살아가는 너와 나의 무력함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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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다 지쳐 주저앉아 버린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걷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은 길 위에서, 가능성만으로 나를 온전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부딪히고, 겪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짜 나를 발견해 간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작은 선택들과 그로 인한 작고 사소한 성공 혹은 실패들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하루만큼의 성찰을 더해, 우리는 자기 인생에서의 나라는 그릇을 빚어간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후회하는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을 함께 주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가능성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로 머무르기보다, 좌충우돌하고, 또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길에 직접 도전하고 부딪혀 가면서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랐다.
결국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어떤 실패로도 배울 수 있다고,
그리고 함께 품어주는 서로가 있다고.
참고문헌.
더 나은 선택에 대한 두려움 '포보', 현상을 이해하고 극복하라 - 리서치페이퍼, 손승빈, 20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