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제와 전혀 다른 오늘
아이는 일찌감치 퍼즐을 다 맞추었다. 공놀이도 해보았지만 혼자서는 재미가 없었다. 현관을 노려보던 아이는 엄마가 집 밖은 위험하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집안의 고요가 점점 아이를 삼키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이 거실 벽난로 위 액자들을 훑고 지나가다, 결국 자신의 사진 앞에서 멈췄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었지만, 아이는 그곳을 기억할 수 없었다.
오후 여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아이는 이상하게도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결국 문밖으로 나섰다.
해 질 녘, 마당은 금빛에 잠겨 있었다. 새가 울고, 꽃들 사이로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았다. 아이는 대문 밖까지 나비를 뒤쫓았으나, 나비는 훌쩍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새소리도 어느새 멀어졌다.
길모퉁이에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시무룩해진 아이는 갈 곳도 정하지 못한 채 걸었다. 집에서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지만, 돌아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S구역을 비행하던 정찰용 까마귀 드론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드론은 로봇 간 교신 채널로 식별정보를 요구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드론은 근접 스캔을 시도했지만 동기화 기록조차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경계 태세로 전환되며 외부 스피커가 울렸다.
“멈춰라! 등록된 식별정보를 대라”
잠시 후, 반응이 왔다.
“나? 나는 준이야.”
“준이라고? 내가 아는 한 그런 모델은 없다. 정확한 모델번호를 밝혀라.”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엄마를 본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엄마!”
멀리서 걸어오는 제이를 향해 준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제이의 시선은 엉뚱한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 내가 안 보여요?”
준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제이는 듣지 못했다. 제이는 코끝으로 내려앉은 새 안경을 가볍게 치켜올렸다. 찰나의 순간, 안경 너머로 쨍한 금빛 세계가 다시 정렬되었다. 건너편 길가에 서 있는 준 대신, 화사한 꽃밭이 그 자리를 메우며 펼쳐졌다.
제이는 꽃들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들 준이 혼자 기다리고 있을 집을 향해서였다. 준은 손까지 흔들어보지만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바짝 따라붙은 드론의 붉은 렌즈가 윙윙거리며 준의 얼굴을 스캔했다.
“미등록 폐기물 정보 감지. 고유 번호 부재.“
“엄마! 나예요. 여기 좀 보세요!”
“뭐, 엄마라고? 주제 파악을 해라. 등록도 안 된 깡통 주제에.“
“깡통이라고? 감히 드론 주제에.”
준이 화를 내자 드론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네 조각난 자아 데이터 따위는 이 구역의 풍경값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소거 절차 허가 대기.“
드론이 기계적인 금속음을 내뱉으며 쫓아왔다. 겁먹은 아이는 도망치면서도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아직도 네가 사람인 줄 아는 거냐? 이 깡통 로봇 같으니라고.”
드론이 회전날개를 가속하며 날카로운 부리를 아이를 향해 내리꽂았다. 쫓기던 아이는 발을 헛디뎌 진흙탕으로 굴러 떨어졌다. 무릎이 깨졌을 텐데,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불쾌한 진동만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아이는 웅덩이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잔잔한 물 위에 얼굴이 비쳤다. 왼쪽 눈가에서 이마까지 피부가 뜯겨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니었다. 검고 끈적한 기름이 회로 기판 위로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제 손으로 뺨을 더듬었다. 보송하고 보드랍다고 믿었던 살결은 실리콘 껍데기에 불과했다. 손가락 끝에 남은 것은 엉킨 구리선과 녹슨 나사뿐이었다.
그동안 자신이라 믿었던, 갈색 곱슬머리 소년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잡동사니 부품과 회선을 이어 붙인 기계인형이 기괴한 몰골로 서 있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아니라,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 때마다 가슴 안쪽에서 맞지 않는 기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덜거덕— 덜거덕—
마당으로 뛰어들자 드론의 추격도 멎었다.
아이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집에 돌아와 보니 준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쓰레기가 쌓여있는 거실 한쪽에 완성된 퍼즐이 놓여 있었다. 제이는 진이 빠지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새 안경을 쓴 그녀는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하며 집안을 정리했다. 근거리, 중간거리, 먼 거리—렌즈에 적응할수록 세계는 안정되어 갔다.
제이는 준이 숨바꼭질할 때마다 숨어 있던 물푸레나무 옷장 앞에 섰다.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작은 소년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제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의 눈동자 안에서 렌즈가 작동하는 게 보였다. 제이는 아이 너머 세상을 본다. 순간 제이가 휘청했다. 메타세계의 명령어와 현실의 사물들이 겹쳐 보이며 현기증이 일었다. 새 시뮬레이터의 감각 각성력이 너무 강했다.
“엄마… 엄마!”
아이가 떨었다.
제이는 로봇이자 준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원했던 준이었다.
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제이가 선택한 찬란한 허무였다.
제이가 손을 벌리자, 주저하던 아이는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를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제이는 몸서리치는 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니?”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이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엄마… 저는 언제까지나 엄마의 준이죠?”
“당연하지. 언제까지나 나의 준이지.”
그날 밤, 제이는 잠든 준의 리셋 버튼을 눌렀다. 찢어진 얼굴은 재생 실로 깔끔히 수선되었다.
그리고 R구역의 전남편에게 답장을 보냈다.
기차표는 고맙다고.
하지만 준을 두고 혼자 갈 수는 없다고.
날이 밝았다. 엄마와 준은 동시에 기지개를 켰다. ‘홈 스위트 홈’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선명하다. 수선화가 핀 마당을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둘은 잔디가 깔린 앞마당에서 부메랑을 던지며 놀았다.
준이 뛰어올라 빨간 부메랑을 낚아챘다. 순간, 아이의 뺨에 돋은 투명한 솜털의 떨림과 갈색 눈동자에 비친 수선화의 입자가 4K 해상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제이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톰의 말대로였다. 하이퍼 렌즈는 준의 생동감을 1%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내고 있었다.
“이번엔 제 차례예요! 엄마, 잡아요!”
아이의 부메랑이 힘차게 날아갔다.
제이의 손끝을 살짝 스친 부메랑이 거실 창을 향해 날아들었다.
와장창!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메랑이 툭 하고 화단 그늘에 떨어졌다.
제이는 놀라는 준을 남겨두고 집으로 달려갔다.
흉측하게 깨진 창을 보자 불길한 감각이 머리를 스쳤다. 떨어진 유리 조각 앞에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새 안경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며 다시 눈을 떴다.
준도 달려오고 있었다. 준의 커다란 눈동자에 비친 금빛 햇살이 부서지는 찰나의 생동감은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가까이 오지 마!”
제이가 소리쳤다. 화들짝 놀라며 멈춰 선 준이 울음을 터뜨렸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 속 창백하게 질린 제이의 얼굴이 비쳤다.
아이의 손을 놓아버렸던 그날 자신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당황한 제이가 준을 와락 안았다.
"엄마가 미안… 깨진 유리에 다칠 까봐 걱정돼서 그랬어."
"준이도 엄마가 다칠까 봐 걱정되었어요."
훌쩍이던 준이 말했다. 제이가 등을 다독이자, 준이 안심한 듯 엄마를 다시 한번 꼭 껴안았다.
“착한 내 아들... 엄마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품 안으로 준의 보송보송한 살결이 느껴졌다. 준의 온기가 밀려들자 제이의 날뛰던 심장박동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준이 엄마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노래하듯 말했다.
“엄마, 우리 오늘 놀이공원으로 모험 떠날 거죠?”
“오늘…?”
제이가 천천히 손을 풀었다.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는 사슴 같은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 제이는 깨달았다.
어쩌면 오늘은—
어제와 전혀 다른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