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궤도 이탈
내가 그녀를 만난 건 타이탄의 리게이아 호스텔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였다.
이름도 리게이아고 예약할 때도 호수뷰였지만 와서 보니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였다.
호수와 100KM나 떨어져 있는데 도대체 왜 리게이아 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 리게이아 호수로 가는 길은 사막 폭풍 주의가 내려져 폐쇄되어 있었다.
호스텔답게 난방은 형편없고 화장실도 공용이지만, 태양계 광역 환승 터미널로 가는 정류장 바로 앞이고 가격도 착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AI 지배인이 제법 그럴싸한 식사와 칵테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스물아홉에도 아직 학생인 나는 건축공학과 AI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다가
행성 언어학과로 전과를 했다.
예측한 건 아니었지만,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 행성 언어학과는 태양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과 7위가 되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발했던 태양 돛을 단 우주비행선, 아테네호가 프록시마 센터우리 b에 도착한 덕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테네 호에 탑승했던 연구진은 센터우리 b에 지구인 테라포밍 가능성이 70% 이상이라고 알려왔다.
그 정도면 여기 타이탄보다 살기 좋은 환경이다.
“이제부터 진정한 우주 시대야. 너는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거야.”
토성으로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기대를 내비치셨다.
태양계 외행성 중 인프라가 가장 발달한 토성의 위성들에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먼 외계로 나갈 거점이 될 토성은 기회의 땅이 되었다.
건축공학과 AI 엔지니어링은 두 분이 각각 추천하셨던 과다. 아무리 전망이 좋다지만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는 따라가기 힘들기만 했다.
그렇다고 행성 언어학이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수학을 안 해도 되고, 여행 다닐 때 의사소통은 되겠다 싶어 선택한 과였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꾸 눈에 밟히는 여학생을 따라 옮긴 거였다.
그녀는 지금 센터우리 b로 향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
좋은 사람이라 좋아했는데 야망이 없어 답답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어 좋았는데...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나쁜 남자란 말인가?
아니면 야망을 가진 더 좋은 사람이었을까?
교환학생을 마친 나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학계를 던지고 해왕성으로 향했다.
기왕에 태양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해왕성에서 바라본 바깥 우주는 광활하고 검었다.
수많은 성단과 이름 모를 별들이
모래알처럼 떠 있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벅차거나 설레지 않았다.
우주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오르트 구름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소행성들이 숨겨져 있을 텐데,
아무런 호기심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왕성의 아름답기로 유명한 짙푸른 파랑 하늘은 오히려 쓸쓸하고 황량했다.
당황스러웠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뭐라도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센터루스 b로 가는 특급 열차표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이주 건설 노동자들이 묵는 마지막 행성이라 모든 것이 비쌌다.
테라포밍 개발구역도 좁았고 빈자리를 메우듯 유흥가만 기이하게 발달해 있었다.
며칠 어슬렁거리다가 가장 빠른 열차를 아무거나 잡아탔다.
타고 보니 올 때 탔던 열차였다. 좌석 번호 같았다.
그렇게 지금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이 돌아가는 중이다.
다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이탄 호스텔에 머문 지 일주일 째다.
갈피를 못 잡는 내 방황에 나도 질려가고 있었다.
바에서 새로운 요리를 주문해 먹는 도중 손목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병석에 누워계신 할머니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여행 중… 말씀하세요. 전 잘 들려요.”
신호가 약해 홀로그램 통화는 꿈도 못 꾸었고, 그나마 통신도 자꾸 끊겼다.
하지만 웅얼거림 속에서도
할머니의 마음은 전달되었다.
가슴이 아릿했다.
부모님은 오지 전담 교사였다.
멀리 전근을 갈 때마다 지구에 집이 있는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곤 했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몇 달 전 처음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리셨다.
어차피 알아보지 못하실 거라고,
할 수 있을 때 견문을 넓히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라고.
달리 어떤 것도 재촉하시진 않았다.
“커피를 마시니까 네 생각이 나서... 너는 유독 쓴 커피를 좋아했잖아.”
"... 그랬었죠. 그래도 할머니가 더 좋아요. “
고백하자면,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에 커피가 없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전 여자친구 때문에 마시는 척한 거였다.
쓰고 텁텁한 커피는 끝나버린 우리 사이 같았다.
통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했다.
마침 스피커에서 청승맞은 음악까지 흘러나오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였다.
애절한 가사를 뚫고 리드미컬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너스 두 잔이요. 럼은 투샷.”
내일, 금성에서 온 여자 2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