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년 전쟁의 포화가 걷히고 M87 성단에 평화가 찾아오자, 황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우주 생명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정복의 역사 속에서 개성 넘치는 종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가여히 여긴 황제는 채집단을 파견했고, 더 진귀한 생명체를 찾아오는 자에게는 막대한 포상을 내렸다. 그렇게 모인 생명체는 어느덧 수 천 종에 이르렀다.
황제의 연회에 초대된 귀족들은 정원에 풀어놓은 우주 생명체들을 보고 경탄했다. 모두가 황제의 지적 호기심과 자애로움을 칭송했다. 교양 있는 귀족 가문들에게 진귀한 외계 생명체를 한 두 종씩 키우며 보호하는 것이 대유행이 되었다.
황제가 여름 별궁의 마당에 동물원을 개방했을 때, 모든 신민은 환호했다. 황제의 동물원은 M87의 신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해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고향 행성이 사라져 우주의 유일한 개체가 될수록 인기가 치솟았는데, 어떤 유약한 생명체는 스트레스로 이상행동을 보이다가 스스로 종의 멸종을 앞당길 때도 있었다.
어떤 생명체가 먼저 완벽한 멸종에 도달할지를 두고 내기 도박도 성행했다. 황제는 신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기뻐했다.
그때 성단 가장자리 블랙홀에 ‘보이저 1호’가 걸려들었다. 낡고 볼품없는 우주선에는 암호처럼 보이는 골든 디스크가 들어 있었다. 황제는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대학자를 불러 해독을 명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대학자는 연구에 매진한 끝에 모든 것을 밝혀냈고, 머나먼 태양계와 지구, 인류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황제의 직속 엔지니어들은 빛의 터널을 가로질러 가장 빠르게 태양계를 도달하는 항로를 찾아냈다.
황제가 친히 태양계에 당도했을 때 인류는 이미 멸망한 뒤였다. 지구가 있던 자리에는 방사능과 자기장만 흘러 다녔다. 황제의 집념을 알고 있는 친위대는 태양계 가장자리, 차가운 별 파편들이 부유하는 오르트 구름까지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그들은 영겁의 어둠 속에 홀로 표류 중이던 우주선을 발견해 내었다. 그 안에 동면 중인 '너희'가 있었다. 그렇게 황제는 너희를 품에 안았다.
황제는 특별히 너희를 위해 지구 환경을 본뜬 돔 형태의 테라리움을 건설했다. 골든 레코드에 들어있던 음악을 틀어주었고, 버섯과 이끼가 자라는 숲을 조성했고, 꽃이 피고 노을이 지는 집을 지어주었다. 너희는 황제의 낙원 안에서 레코드 사진 속 인류처럼 천진하게 뛰어 놀 것이다. 황제는 너희에게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내렸다.
매끄러운 피부, 단단한 근육 그리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너희는, 이제 우주의 유일한 호모 사피엔스다. 황제의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명체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너희, 아담과 이브.
황제 동물원의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한다.
• terrarium made by S &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