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동물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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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지루한 것을 참지 못했다. 평화가 길어질수록 M87 성단의 화려한 연회는 빛바랜 기록물처럼 따분해졌다. 황제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정원 한가운데 놓인 유리 돔을 내려다보았다. 그 안의 인류는 흙을 일구고 불을 피우며 원시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을 접어라."
시종의 손가락이 제어판 위를 미끄러졌고, 테라리움 내부의 시공간이 비틀렸다. 성단의 하룻밤이 돔 안에서는 수천 년의 세월로 압축되었다. 황제가 와인 한 잔을 비우는 동안 인류는 철기를 제련했고, 다음 연회를 준비하는 사이 그들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길을 놓았다.
황제에게 그것은 진화라기보다, 유리병 속 먼지들이 제멋대로 증식하며 복잡한 문양을 그려나가는 타임랩스 영상에 가까웠다. 인류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찬란한 문명에 도취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우주의 신비'라 부르며 관측하는 별빛은 황제가 리모컨으로 조절하는 홀로그램 조명에 불과했다. 황제는 그들이 다시 한번 우주 탐사라는 무모한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권태로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채웠다.
마침내 인류는 과거의 유산인 ‘보이저’를 계승한 탐사선을 쏘아 올렸다. 온 지구가 숨을 죽인 채 그들의 기술이 집약된 우주선이 심우주로 뻗어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우주선이 돔의 경계에 닿는 순간, 탐사선은 차갑고 단단한 유리벽에 부딪혀 무력한 불꽃으로 사라졌다. 황제는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드디어 벽을 만났구나. 저들의 절망하는 표정 좀 봐, 정말이지 예술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유희는 거기까지였다. 벽에 부딪혀 꺾여버린 인류는 제자리에서 신음할 뿐이었다. 황제는 하품을 하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때 멸망했으나 살아남아 결국 다시 한계에 부딪힌 수집품들이 시시해졌다.
"재미가 없구나. 저것들을 모두 파괴하라."
그 한마디에 성단의 정원은 거대한 소거의 장으로 변했다. 수만 년 동안 수집된 진귀한 종들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유일했던 생명의 빛들이 순식간에 꺼져가던 그때, 인류의 테라리움 앞에서 황제의 손가락이 멈췄다. 금이 간 유리벽의 한 지점을 미친 듯이 파고드는 인류의 꼴사나운 생존 본능에서 묘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군. 그래, 너희만은 이 절멸을 지켜보는 증인으로 남겨두겠다."
그렇게 황제의 자비 속에, 오직 인류의 유리 돔만이 홀로 남겨졌다. 전쟁도, 정적도, 유희도 사라졌다. 황제에게는 긴 침묵만 남았다.
어느 불면의 밤, 홀로 산책하던 황제의 눈에 미세한 빛 하나가 걸렸다. 정원 구석, 인류의 돔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황제가 의아해하며 다가간 순간, ‘딱’ 하는 균열 소리와 함께 유리벽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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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필사적으로 쏘아 올린 무언가가 ‘푱’ 하고 튀어 올라 황제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인류가 목도한 것은 수억 개의 태양이 명멸하고, 암흑 물질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였다.
황제의 눈앞 우주선에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인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우주는 진짜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대답하라,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주에 구멍이 뚫렸다. 은하를 몸으로 두른 황제는 처음으로 당황인지 설렘인지 모를 파동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인 블랙홀이 수축했다. 이제 세상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 예감했다.
* 이미지 : NASA 2020.3. 31. 별을 삼키는 블랙홀 상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