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보다
아무래도 신년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주변에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가오지 않은 시간은 그 불확실성 자체로 사람을 두렵게 하기 때문이겠죠.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
점쟁이는 몇개의 요소를 통해 내 운명을 점쳐 줍니다.
나는 좋은 것들은 안심을 하고 나쁜 것은 되도록 피하려 노력하죠.
서른이 넘어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가끔씩 서로가 점쟁이가 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 첫번째 순간은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때. 특히 소개팅 자리.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몇가지 단서를 통해 너와 나의 미래가 과연 행복할지를 점쳐봅니다.
"직업. 연봉. 성격. 취향."
조건을 넣어 보고, 미래의 너와 나의 궁합을 미리 생각해 봅니다. 실패할 일은 없을지 생각해 봅니다.
서른이 넘은 경우 이미 지난 사랑에서 상처를 받아 본 사람들이 많죠.
시간이 지나 아물수는 있지만 어쨌든 실연의 경험 자체는 쓰라리고 아픕니다.
다시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면. 되도록 피하고 싶죠.
그리고 두번째는 결혼을 결심할 때.
연애에서 잘 맞았던 연인이라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들면 다시금 이 사람과의 궁합을 점쳐보게 됩니다.
평소에 아이는 좋아하는지 물어 보고, 집안일은 좀 할 줄 아는지 묻기도 합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라 미래를 앞서 예상하는 그 마음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조금씩 변하고, 아마 나중에 미래에 내가 대면하게 될 상황은
머릿속의 상상 보다는 많이 다르겠죠.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에 대해서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몇가지 조건들로 '혼자' 점치는 것 보다는
긴 이야기를 나누어 보며 서로의 구체적인 마음을 '함께' 알아가는 것."
점을 칠 때 점쟁이는 몇개의 짤막한 조건을 전달 받아,
책으로 공부한대로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 줍니다. 그 책은 주역으로, 일종의 통계서입니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더라, 라는 과거의 기록이 미래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의 궁합을 스스로 점쳐볼 때도 마찬가지의 공식이 성립합니다.
몇가지 조건들을 파악하여 내가 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 혹은 주변에서 들은 데이터 들을 토대로 미래의 궁합을 점쳐보게 됩니다.
통계는 때로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용한 점쟁이가 그래서 있는 거겠죠.
하지만 백프로 맞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결국 과거의 통계가, 실제하는 미래를 완벽히 예언하기란 힘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만남에서도 동일합니다. 상대에게서 몇개의 조건들만 받아 입력해서, 자신의 과거 데이터에 의존해서 함께 하는 미래를 혼자 점쳐 보는 것.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많이 저지른 과오이기도 합니다.
긴 이야기를 상대와 가급적 많이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남을 결정할 때도,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도.
함께 하는 연애, 함께 하는 결혼에서 주체는 너와 나 각각이 아닌 '우리' 니까요.
연말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며 지난 관계와 지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실수 했던 것들과, 어쩌면 지금도 실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사람과 연애를 잘 시작할 수 있을까.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실제로 아이를 좋아할까. 힘들어할까.'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만남에 있어 혼자 둘의 미래를 점치고 판단하고, 그 판단 속으로 혼자 도망치지는 않으려 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긴이야기 속에서 함께 미래를 걸어나갈 동력을 얻어보려 합니다.
불안에 못이겨 소중한 것을 성급히 판단하고 놓치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고대해봅니다.
신년점을 보기 위해 점집 전화번호를 주변에서 몇개 얻었습니다.
나, 혹은 미래에 함께 하게 될 사람과의 미래를 물으려다 말았습니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술한잔 기울이며 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지요.
그 속에 어쩌면 우리의 정답이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