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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기_22화] 그래서 허무한 거구나?

by 이다

왜 허무한 죽음들이 반복될까? 궁금했다.

나고 자라 자식을 낳고 돈에 허덕이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독하게 늙어가는 그런 비극이 무한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가 너무 역했다.

그렇지 않고 평온한 삶과 의미 있는 축제 같은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TV와 연을 끊은 지 오래다.

문득 TV를 보면 30년 전과 똑같은 스토리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이는 환상에 사로잡혀 넋을 잃고 않아있다.

아이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 이 무의미한 반복에 역시 역함을 느낀다.

스토리가 정해진 삶을 또다시 시작하기 싫었다.


그러다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뒷부분 역자의 해설을 먼저 읽었다.

역자는 현대 사회의 속성인 단절이 지금의 허무를 느끼게 하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문명의 발달은 신으로부터 인간을 단절시켰다.

신이라면 영적인 어떤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이는 현실은 절대적 진리의 반영이라는 플라톤적 세계관과 작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 진리는 추상적이다. 과거의 삶은 이 추상을 재현하고 물질화하는 장이었고 인류는 그 과정 속에 있었다.


하지만 문명이 발전하며 삶은 추상에서 분리된다.

라디오 조립을 하는 일은 신의 음성을 전달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신은 효율을 최고로 여기고 효율은 분리를 추구한다.

분리는 돈을 위한 것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분리는 신도 토막을 냈다.

살아남는 것은 오직 하나, 새로움이다. 그냥 새것만이 살아남는다. 분리되었으니 생성된 새로움이란 것.

이것이 페스트 패션의 이유다. 우리가 오래된 것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추상이 사라졌다는 말은 지향점을 잃었다는 말이다.

이 속에서 정치가 길을 잃는다. 지금 정치를 보자. 저것이 좌와 우의 싸움인가?

자본도 곧 길을 잃을 것이다. 아니 이미 힘을 잃었다. 화폐라는 것은 교환할 대상이 존재해야 성립하는 시스템이다. 지금 무엇이 우리 자본시장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보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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