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다인종, 다양성
OZON(오존)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러시아 소유 다국적 온라인 쇼핑몰 회사다.
다국적 온라인 쇼핑몰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어쩌면 대륙 끝 바다를 삼면에 맞댄 반도의, 그나마도 육로를 향한 교류가 막혀 바다를 통한 운송으로만 해외 물건을 교류할 수 있는 남한 사람에게는 꽤 생소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존은 간단히 말하자면, '쿠X'이다.
작은 남한 땅에서 빠른 배송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쿠팡과는 그 지향이 다르다. 육지 통해 교류하는 여러 나라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이름을 높인 회사다.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 우즈베크, 조지아, 키르기스, 아르메니아 7개국 사용자를 대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고 운송을 담당하는 쿠팡. 상상이 되는가? 파트너 배송 서비스(아마 소비자 없이 판매자만 교류하는 형태)를 하는 나라인 중국, 터키, 인도, 폴란드 등을 포함하면 한 사이트에서 적어도 11개국 제품을 볼 수 있으니 정말 '다국적'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온라인 쇼핑몰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처음 오존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더라. 시작은 별것 없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 직원분을 첮았다가 우연히 주문 현장을 목격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총 7명 정도) 중 누구도 이 사이트를 이용한 전적이 없어 외국인도 사용 가능할련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지만, 다행히 사이트가 영어를 지원하고 번역도 원활해 사용에 어려움이 없었다. 판매자-소비자 채팅에도 자동 번역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소통을 돕고 있으니 과연 이것이 글로벌 기반 쇼핑몰이구나 싶더라.
사용 방법은 쉽다. 사이트에 들어가고, 물건을 고르고, 주문한다. 끝.
온라인 쇼핑몰 사용법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른 나라 것이라고 다를 게 있으려고. 다만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카자흐 외 지역 판매자의 물건을 사는 경우다. 이 경우엔 물론 해외 배송이 되어 통관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INN 번호다.
INN은 카자흐에서 사용하는 개인 식별 번호로, 한국인 맞춤형으로 설명하자면 외국인과 내국인이 모두 같은 형식의 주민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해하면 되겠다. 물론 한국의 주민 번호가 숫자 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성별, 출신지 등)를 갖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출생 연월일+고유 번호‘ 정도만 취급한다. -딴소리지만 이전에 기업이 지원자의 주민 번호를 보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오랜 시간 탈락시켰다는 뉴스를 읽고 참 기가 막혔었다. 세계에서 보면 엄지손톱만도 못한 땅덩어리에 살면서 뭐 그리 싫어할 것들이 많은지.- 사이트에서는 여권 번호와 INN 번호 둘 다 입력하라 요청하는데, 한국 여권은 알파벳을 포함하고 카자흐는 숫자만 사용하게 되어 있어 시스템상 입력이 불가하다. 해당 건에 대해 Q&A를 남겼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답은 없다. 이건 한국과 참 다르더라..
아무튼, 문의를 넣고 일주일 뒤 결국 INN 번호만으로 주문을 시도해 보았다. 주문 후 사이트 내에서 자체적으로 번호에 오류가 없나 검사한다고 하니 오류가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걸러지려니~ 하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통과. 한 달 내내 배송을 추적한 결과 별 알람 없이 국경을 넘어 집 근처 국제 우편 창고(Kazpost)에 물건이 왔다. 여기에 물론 여러 다사다난한 여정이 있었으나(사이트에 제공된 주소지와 실수령지 주소가 달라 헤매고, 수령 방법이 복잡해 직원들과 손짓발짓번역기야도와줘짓을 하며 창고에서 직접 물건을 찾아 간신히 수령하는 등) 그 부분은 생략하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에세이보다는 사이트 사용 안내문 같군. 리뷰 글이 된 것 같지만 어찌하겠나. 그만큼 정보 찾기가 어려구나 생각해 주길. 그저, 이후 카자흐에 갈 한국인이 오존 사용에 대해 방법을 찾고자 할 때 검색 한 켠에 나올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내게 이런 글이 정말이지 간절했으므로....
오존은 기본적으로 배송이 오래 걸린다. 카자흐 내 상품 주문만 기본 일주일이고 (선택 옵션에 '3일 이내/일주일 이내 수령' 옵션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최대 +3일 정도로 취급해야 한다. 세계 9위 면적의 위엄을 새삼 느낀다.) 해외 제품은 기본 한 달 걸린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품목을 아우르고 있어 이것 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옷만 하더라도 사이즈가 기본 150cm부터 190cm까지 제공된다. 동아시아계 사람부터 체격 튼튼 머리가 나무 높이에 있는 러시아계 사람까지 두루 아우르다 보니 기본으로 제공하는 옵션 폭이 남다르다. 한국에서는 남성용 옷 M 사이즈 혹은 여성용 M, L 사이즈를 입던 나지만 여기서는 무조건 여성용 XS~S 사이즈만 입는다. 그마저도 겨우 딱 맞거나 조금 헐렁한 정도. 드물게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도 쉬이 입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성용도 170cm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지기수라.
사이트를 구경할 때 리뷰란을 보면 새삼스레 '내가 외국에 있구나' 느끼게 된다. 상품 이미지야 뭐, 한국도 외국계 모델이 입은 사진을 보여주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지만. 리뷰 글에 보이는 주황색, 노란색, 회색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한 구매자들. 180cm 남성들이 치마바지를 구매해 사진을 올리고, 붉은 고수머리 주근깨 가득한 푸른 눈의 사람이 중국 선협 복장을 하고 춤추는 영상을 찍는다. 60대 어르신이 귀걸이 목걸이 피어싱 가득 단 홍대 20대가 입을 법한 의상을 주문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이곳은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고, 사이트는 다양성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지 않을 텐데.
나는 누가 봐도 동양인이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 싶을 얼굴에 한국인 평균 체형과 키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거리를 걸을 때면, 종종 40~50대 어르신들이 “девушка!(거기 아가씨!)” 하며 나를 불러 세우고 길을 묻곤 한다. 정거장에 서 있으면 교통을 묻고,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으면 상품에 대해 질문한다. 생활 한복을 입고 있어도 그렇더라. 피부색이니, 체형이니, 복장이니. 내게서 '한국'을 주장하는 모든 요소는 등에 맨 싸구려 가방 하나를 못 이긴다. 핸드폰 없이 가방 하나 지고 터덜터덜 걷고 있으면 그게 바로 현지인. 중요한 건 나이 정도. 그 외 다른 정보는 가치가 없는 듯하다.
'외형'만으로 그 사람의 역사를 알 수 없으니까. 워낙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곳이니까.
그게 당연한 거다. 이곳에서는.
뜬금없지만, 나는 한자를 좋아한다.
익숙하지 않은 문자, 복잡한 획수와 상형 문자가 주는 신비함. 뭐 그런 건 전혀 아니고. 나란 사람 애초부터 역사 관련 컨텐츠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물으면 초등학생 입에서 나오는 답이 삼국지요, 중학생 때는 세계사였다. 고등학생 이후부터는 한국 무협 소설과 중국 선협 드라마 빠지는 등 오랜 기간 확고부동한 취향을 갖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동양 것을 좋아하게 됐다. 무협을 이해하고 싶어 중국사 책을 뒤지다 한국사를 취미로 공부해 1급 자격증을 땄다. 이어 취미의 연장으로 한능검 시험을 준비하다 덜컥 취직해 지금 이곳에 와 있으니. 만약 해외로 취직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중국사와 중국 문화 관련 교양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을까? 쓰고 보니 해외에서도 평생교육 지원으로 강의 듣기는 가능할 것도 같다. 하여간. 그러한 고로, 내가 어찌 한자를 좋아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어찌 동양풍 의상을 주문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사이트를 구경하며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내 취향 옷을 결제하고 한 달 꼬박 걸려 손에 넣은 그 순간까지. 사실 내내 두려움이 있었다.
한국 살 적엔 생활 한복을 구매하고 이곳에 와 중국 느낌 물씬 나는 동양풍(특히 중국 판타지가 가미된) 옷을 신나게 주문하고서도, 유별나다는 시선을 받을까 입기를 저어했던 게 사실이다. 내 취향이 확고한 만큼 별나다는 걸 알아 그린 듯 평범한 옷만 찾던 나다. 하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국이었다면 특별한 행사 때에나 입을, 단체로 유적지나 경주를 갈 때 입을 법한 옷이었지만. 체형과 나이를 떠나 입고 싶은 것을 입는 사람들이 남긴 글을 기억하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손톱에 그린 직장 동료분을 떠올리며, 가죽 재킷 가죽 바지에 은색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학원 강사 일을 하는 현지 고객을 보며. 나도 그들에게 용기를 얻어 오랜 시간 묵혀둔 내 취향을 온몸에 걸치고 직장에 갔다.
“테무에서 산 것 같아요.”
직장 동료분(한국인)의 코멘트는 적나라했다. 무슨 뜻인지 너무 알 것 같아 한참을 웃었다. 푸른 대나무가 그려진 셔츠에, 치마를 절반만 잘라 붙인 바지. 한국이었다면 도저히 직장에서 입을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 거리만 걸어도 무료한 이들의 몇몇 시선을 끌어당길 것이니. 그래도 좋았다.
입고 싶은 걸 입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란 얼마나 다정한가.
이곳은 카자흐스탄.
열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검은 머리 외노자에게 길을 묻는
저는 지금, 카자흐스탄에 있습니다.
<후기>
지금 대략 이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테무 산(産) 제품처럼 보인다는 게 딱 느낌이 오실까요? ㅎㅎ
고려인 분들이 계신 덕인지 동양계, 특히 한국인은 이곳에서 유독 '이국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고려인 분들을 뵐 때면, 눈과 파부 톤 대조를 진하게 하는 특유의 화장법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외견상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고려인에 대해서도 참 쓰고 싶은 주제가 많습니다.
지난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여럿 들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이 많아 이곳에 상세한 내막을 올릴 순 없겠으나
개인을 넘어 세대에 남은.
내국의 일로 치이던 나라이기에
차마 시선을 두고 기록하지 못한
한 시대의 특별함이.
언뜻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집니다.
언젠가 그 인상이 선명해져 이를 추려 정돈하고 쓸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