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74] 고려인에 대한 기록

한민족과 한 민족 신화

by 가랑비가람

이곳에 살다 보면 고려인을 만날 일이 많다.

뭐 아무래도 직장이 직장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으로 오는 비자를 받기 쉬운 고려인 분들이, 특히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 혹은 친인척을 둔 이들을 만날 일이 많다.


알고 있는가? 현재 고려인은 그 3대 후손까지 한국 비자를 쉽게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중 취득이 가능한 것인지,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영주권 획득이 아닌 임시 체류 자격과 관련한 허가를 쉽게 내어준다는 것인지 그 상세한 내용은 모른다. 다만 고려인의 경우 한국 독립을 기준으로 1세대를 두어 80년이 지나 그 후손에 해당하는 3세대까지 비자를 비롯한 여러 외교 관련 서류 과정에서 편의와 이득을 제공한다더라. 매년 중앙아 지역에서 신청자를 받아 프로그램 일환으로 한국에 약 100명의 고려인 후손들을 초청해 전국을 돌며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일시 관광 프로그램부터, 취직 및 취직자의 친인척과 가족에 대한 거주 관련 비자까지. 어릴 적 한국에 와 초중고를 다 한국에서 나와도 성인이 되면 얄짤없이 본국에 돌아가야 하는 한국의 폐쇄적 거주 비자 취득 조건을 볼 때, 아주 파격적인 혜택과 열린 기회를 주고 있구나 싶어 놀랐다.


이곳에 와 만나고 경험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 볼까.

여기 친한 세 친구가 있다. 이 셋은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때 고려인 후손인 한 친구가 말한다. 자신은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비행기 값은 물론 자신이 냈지만, 그곳에서 먹고 자고 이동하는 비용을 일체 내지 않았다고. 그 말을 들은 두 친구는 값싸게 한국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나를 찾아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세 친구의 성을 확인한다. 역시. 처음 말을 꺼낸 이의 성은 박. 고려인이다. 자기 혈족에게만 주어진 특혜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별도로 그런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을 물린 뒤, 그 고려인 학생을 조용히 불러 알려준다. 네가 알고 있는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고. 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세대에 이르러 고려인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특이성과 정체성이 다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손이 가는 어려운 전통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인건비가 저렴한 중앙아를 떠나 러시아 혹은 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중앙아를 떠난 고려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현지 음식을 먹고 자라며 고려인 문화와 음식을 모르는 고려인 4~5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들을 고려인으로 인정할 것인가? 몇 대 후손까지 고려인으로 인정할 것인가. 모계가 고려인이어도 성이 다르면 고려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적어도 20년 이내로. 한국에서 현지 비자 폐쇄성과 고려인 비자의 개방성. 인정 기준에 대한 상대적 기준이 한 데 모여 형평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 싶다. 뭐. 이미 현장에서는 말이 나오고 있을지도.




나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고려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흔한 역사적 배경만 아는 정도. 조선 후기에 탄압을 피해 간도를 개척하러 간 사람들이 있었고, 러시아가 남하해 국경이 맞닿게 되었고, 일제 침략 과정에서 동위토문 등을 이유로 간도 지역이 국경 너머로 확정되고, 강점기가 시작되고.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블라디보스크 지역에 한인 지역을 형성하고 모여 살 적 냉전이 심화하며 독립 전쟁을 우려한 소련이 중앙아 곳곳의 허허벌판으로 한인들을 던져두고(다소 감정적인 어휘지만, 사료를 보면 아마 이 말이 맞을 거다. 카자흐 최초 고려인 정착지라 불리는 유적지는 토굴에 가깝다. 황야에 남겨진 사람들이 밤 추위를 피하려 급히 굴을 파고 돌로 집을 지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초라한 형태였으니.) 갔으니 그게 대략 1930년대. 카자흐 및 우즈베크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진 이들과 그들의 후손을 고려인이라 한다.


이곳에 와 알게 된 흥미로운 어휘들.

노다지라는 말이 있다.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광맥 등을 이르는 말인데, 이 기원으로 조선 후기~대한제국 시기 열강들에 이권을 빼앗기던 시절 채굴권을 가져간 열강들이 금덩이를 보며 “노 터치 노 터치!” 했다 하여 노다지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러시아어와 관련해서도 이와 비슷한 설이 있다. Токарь(또까리) 라는 단어인데, 벌목하는 사람을 이르는 단어다. 당대 러시아에서는 나무를 베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여 유배(냅다 시베리아 벌판에 보내는 그것)시킬 정도였는데, 어찌 됐든 나무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 조선에서 산림채벌권을 획득하고 온갖 산의 나무를 베어갈 적 그 일을 누구에게 시켰을까. 조선 사람들에게 나무 베는 일을 시키며 또까리, 또까리 하니 그 말이 '따까리'라는 단어로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더라.


반대 경우도 있다.

위에 적은 것들이 외세가 한국에 들어와 남긴 흔적이라면, 고려인들이 한국말을 그들 문화에 남긴 경우도 있다. '바비'라는 단어가 그 예다. 무엇일지 짐작이 가는가? 바로 '밥+이'이다. 주식인 쌀밥을 뜻하는 '밥'에 조사 ’이‘가 붙은 말이, 쌀밥을 뜻하는 '바비'로 변한 것이다. 빵과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는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은 여전히 밥을 주식으로 먹었고 그 문화가 한국어를 전혀 할 수 없는 후세대에 남아 고유 명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니.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 외에도 성씨와 관련하여 여러 재미있는 변화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성씨답게 이곳에서도 고려인 다수가 킴(Kim), 리(Li)를 사용한다. 박(Park)도 자주 보인다. 특이한 것은 그 형태가 변한 경우인데, 이중모음으로 러시아어 표기를 따라 발음이 달라진 트소이(Tsoy/최), 크반(Khvan/황) 등을 처음 봤을 땐 이게 한국 성씨인 줄도 몰랐다. 현지 직장 동료 분이 이들도 한국 성이라 하여 얼마나 놀랐던지. 텐(Ten)은 천天이 중국식으로 바뀐 건가 했는데 '전'이라고 하더라. 러시아어는 ’ㅈ+이‘ 음가가 '디'로 변하기 쉬운 경향이 있으니 전>지언>지엔>디엔>티엔>텐 형태로 변화한 게 아닐까 싶다.


이외에 흥미로운 성씨 변화는 단모음 성씨에 가(家)를 붙여 아예 새로운 성씨를 만든 경우다. 이, 오, 허(한국어 ㅎ는 소리가 아주 약하다. 그 반면 러시아어 Х는 목청에서 나오는 ’ㅋㅎ‘ 음가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같은 ’ㅎ‘로 표기하지만 그 소리가 굉장히 다르다.) 등 단모음 성씨를 ’이 가(家) XX‘ 형태의 표현말을 빌려 '이가이' '오가이' '허가이' 등으로 바꿨다. 특히 이중 허 씨는 자음도 모음도 그 음가가 러시아어에 없어 성이 거진 원형도 없이 달라졌는데, 영어 표기로 하면 Shegai(쉐가이), Xhegai(혜가이) 등으로 나타난다. 이미 비슷한 성씨가 있어 그쪽과 합쳐졌다는 설도 있지만.

추가로, 한(Хан) 씨는 영어 표기로 Khan 이 된다. 익숙한 이름이다. '칸'. '황제'를 성에 넣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곳에 와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고려인들이 한국에 대해 느끼는 어떤 그리움.


나 개인이 아닌 내 출신을 향한 다정.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를 향하는 그들의 호의였다. 그들은 내가 고려인에 대해 어떤 걸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한국 사람들이 고려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고려인 문화, 즐겨 먹는 음식을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는지 물었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모국이 아니더라도. 발 디딘 적 없지만 나와 연결된. 방황 끝에 돌아갈 수 있는 두 번째 피난처. 그들에게서 떠난 적 없는 땅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과분한 마음이었다.


한국이 정규 교육에서 조선족, 고려인 등 '한반도 밖‘ 한국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다뤄 주었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세계의 부가 기반을 가진 소수에 몰리고 있다. 구조가 붕괴한 것을 개인의 탓이라 말하여 더 성실하라, 더 노력하라 요구하는 건 이상하다. 나를 탓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눈 돌려 자기보다 더 약하고 위태로운 이들을 비난한다. 내 불행이 그들 탓이라 말한다. 나보다 약한, 내가 절대 속하지 않을(거라고 믿는)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건 언제나 쉽고 전체 구조를 바꾸는 건 어렵다. 먼 길보다 가까운 혐오를 택하는 오늘이다.


나는 한국이 우리의 역사 교육을 재고해 주길 바란다. 한 민족 신화는 없다. 가까이 살며 섞이지 않을 순 없다. 인간에게는 순도를 물을 수 없다. 국경이란 칼같이 자를 수 없고 언제나 그 선 위아래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주변부를 조명하고 포함하기 어렵다면, 하다못해 국경 밖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이라도 담아주길. 반도 안에서 바글바글 자리 잡고 사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우리’가 포함하는 대상을 조금의 공통점으로나마 더 넓힐 수 있기를. 어린 시절에 그런 인식이 옳다 긍정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조금 더 관대하고 포용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먼 나라로부터. 우리로부터.






fgg.jpg 하늘이 맑아 저 멀리 산이 보이던 어떤 하루. 카자흐 산은 한국의 나무 빽빽한 산과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D-581]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