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

떠나는 사람은 웃음 짓지만, 남겨진 사람은 눈물짓는다.

by 정주원

출국 Departure


흐르지 않길 바랬던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출국장 앞으로 데려다 놓았어. 네 캐리어 손잡이가 내 손에서 네 손으로 옮겨지는데 처음 네가 떠난다는 게 제대로 실감이 났어. 1년 남짓 쌓아온 우리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사내자식이 이깟 일로 우나. 내 뭐 어디 죽으러 가나?"

그러게.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잘 지내다 와. 도착하면 바로 카톡 해."

"걱정 마라. 와이파이 터지는 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락 할끼다."

"진짜 맨날 통화할 거다. 누구든지 바람나면 아주 둘 다 가만 안 둬."

"우리 진수 귀엽네에. 내 새끼 일루 와바라 한 번 안아 보고 드가자."

날 한 번 안고는 너는 '출국'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 아래 자동문으로 걸어 들어갔어.


생각해 보면 난 벌써 네가 돌아오는 날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아직 넌 떠나지도 않았는데, 난 벌써 네가 돌아오면 뭐부터 할지 생각하고 있었잖아. 넌 내가 맨날 '혜정이 한국 오면'이 입에 붙었다고 말했지. 한국 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고.


"으이구 내 새끼, 6개월 동안 누야 보고 싶어서 우짤꼬?"

내가 계속 시무룩해 있으니까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네가 능청스럽게 장난을 쳤어.

"그런 얘기 하지 마 눈물 나니까. 너랑 같이 찍은 사진이랑, 네 사진 보면서 버텨야지."


맞아. 난 네가 없을 6개월을 그냥 지워버리고 싶었어. 추억을 에너지 삼아 6개월이 1초처럼 흘러가 버린 뒤 입국장을 나와 내게 달려오는 네 모습만 생각하려고 했어. 출국하는 널 보며 난 너의 입국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까 억울하네. 왜 나만 울어? 너는 슬프지도 않냐?" 내가 서운함이 살짝 섞여서 너에게 물었지.

"뭐가 슬프나. 거기서도 잘 있다가 6개월 뒤에 다시 올 텐데." 넌 웃으며 말했어.


그때였던 것 같아. 우연히 학교 선배가 술자리에서 내게 해 준 말이 떠올랐던 순간이. 재현이 형 알지? 나랑 제일 친한 우리 과 선배.



"아니 형, 내가 좀 억울하달까 그런 게 뭔지 알아요? 나는 하루하루 혜정이 출국 날짜 다가올 때마다 우울해지고, 막 눈물이 나고 그러는데. 얘는 그런 것도 없나 봐. 보면 나만 아쉽고 나만 서운한 거 같아요."


재현이 형은 빈 내 소주잔을 채워주면서 말했어.


원래 떠나는 사람은 웃음 짓지만,

남겨진 사람은 눈물짓는 법이야.




입국 Arrival


큰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이윽고 네 모습이 보였어. 6개월 만에 넌 언젠가 나도 모르게 네 것이 되어버린 내 비니 모자를 쓴 채 한국으로 돌아왔어. 거기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해선 안 되는 거였겠지. 넌 돌아왔지만, 이미 한 달 전에 넌 내 마음속에서 떠나겠다는 말을 내게 전했으니까. 세상에 가볼 데가 좀 많냐던 네 말이 문득 생각났어.


새벽 5시에 알람이 울렸어. '혜정이 한국 오는 날'이라고 쓰인 화면이 밝게 빛나면서. 세상모르고 자다가 알람을 듣고 일어난 거라고 거짓말 하진 않을게. 전 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어. 한 숨도 못 잤어. 어떻게 잘 수 있겠어. 6개월 내내 울리기만 기다렸던 알람이었는데. 밤 새 널 보러 갈까 말까 고민했어. 그런데 그 알람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더라.


네 손목을 휘어잡고 얘기 좀 하자며 널 끌고 가는 장면을 공항철도 안에서 수백 번이나 상상하며 네가 돌아올 입국장으로 향했어. 난 내 마음속에 계속 악천후를 만들고 있었어. 머리 속엔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어. 정신이 나간 듯 수 백 번 너에게 전화를 걸고, 울며 불며 난 몇 번이고 널 붙잡으려 했었잖아. 내 마음속에서 이미 출국 수속을 마친 듯한 네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도록. 내가 힘든 만큼 널 계속 힘들게 해야 네 마음에도 태풍, 홍수, 아니 어떤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서 널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6개월 만에 다시 본 너는, 환하게 웃고 있었어.


그리고 그제야 알았어. 난 억지로 널 붙잡고 있었는데, 너의 비행기는 이미 세차게 비를 뿌리는 비구름을 뚫고 떠나버렸구나. 아니, 네 마음속은 애초에 비는 커녕,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는 푸른 하늘이었구나.


6개월 만에 너와 난 같은 하늘 아래 서 있는데

이제 보니

6개월 만에 너와 난 서로 다른 하늘을 두고 섰구나.


난 한복을 입고 환한 얼굴로 'Welcome to Korea'를 외치는 소녀 사진이 붙은 광고판 뒤에 서서 멍하니 널 바라만 봤어. 인사는 그 소녀에게 대신해달라고 부탁한 듯.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난 네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봤어. 이미 한 달 전에 떠난 네 비행기가 떠나는 걸 난 이제야 바라봤어.






"아니 이해가 안 가네. 왜 남겨진 사람은 무조건 눈물을 흘려요? 웃으며 보내준다는 말도 있잖아? 그럼 남겨진 사람도 웃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재현이 형에게 물었어.


"그런 건 서로 떠난 거지, 누군가 남은 게 아니라. 웃으며 떠날 순 있어도 웃으며 남겨질 순 없어."

이해가 될 듯 안될 듯,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며 슬쩍 웃더니, 재현이 형이 계속 말을 이어갔어.


"왜 추억은 구름 같은 거라고 하잖아. 떠나는 사람의 추억은 맑은 하늘의 흰 구름이야. 떠나는 사람은 그 구름을 바라보며 맑은 날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는 거지. 추억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로 남는 거야. 그런데 남겨진 사람의 추억은 흐린 하늘의 비구름 같은 거야. 남겨지는 사람에게 추억은 쌓일수록 날씨는 점점 흐려져. 그 사람과의 행복을 즐기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그 사람의 부재를 걱정하거든. 추억이 추억으로 남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저 행복했던 한 순간의 이야기로만 덩그러니 남겨질까 봐. 아이러니하지.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고 추억만 남았을 때,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는 비가 내리고, 눈에선 눈물이 흐르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소년의 사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