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정리에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 둘째를 가지기 전까지 나는 PT를 받으며 7개월간 헬스에 푹 빠졌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가장 탄탄해졌던 거 같다.
잡생각이 많고 의심도 많은 나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다. 나도 안다. 내가 참 복잡하고 또 피곤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명상도 해보고 요가도 해봤는데. 아. 이쪽으로는 나랑 안 맞다. 잡념이 더 생긴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쇠질이 낫다. 허벅지가 불타고 있는데 다른 생각은 들어올 겨를이 없다.
하루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아이와 크게 다퉜던 것 같다. 등원 준비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아이도 나도 터졌던 날. 꾸역꾸역 어린이집에 애를 떠밀다시피 집어넣고 나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PT쌤은 별 말은 안 하셨고 유독 심하게 하체를 조져주셨던 기억이 난다. 1시간 동안 억 소리만 났는데 신기하게도 운동이 끝나고 나니 정말 기분이 깨끗해져 있었다.
오늘큰 아이는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었다. 둘째도 운다. 오늘 해야 할 집안일도 머릿속에 떠오르고 마음이 바빠지는데 아이들의 울음이 경보기 마냥 사납게 울어댄다.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세수를 했다. 괜찮다. 괜찮다. 빨리 나가버리자.
둘째를 안아 유모차에 태웠는데 바지가 없다. 기저귀를 갈고 깜박한 거다. 첫째를 겨우 달래 어린이집에 왔는데 가방이 없다. 식탁 위에 두고 온 거다. 시원한 수영장 물에 풍덩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귓속에 물이 들어가는 느낌 좋아하는 사람 계신가요? 바로 접니다.
하아.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요.
요즘 매일 들르는 카페 사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주신다. 애 엄마가 되면서 내 끼니와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동네에 단골가게를 만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장님의 그 안부인사가 듣고 싶어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신다.
애 가방을 깜박해서 다시 집에 가서 갖다주고 오는 길이예요.
-어쩐지 매일 오는 시간이 아니고 좀 늦는 거 같더라.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고 집에 오니 내 꼴도 집안꼴도 엉망이다. 나는 집 정리는 제쳐두고 올리브영으로 향했다. 횡단보도에서 70프로 세일을 한다는 현수막을 본 터다.
오늘은 소비운동의 날이구나. 그래, 이 운동도 필요하지. 필요했던 아이템을 이것저것 골라 담고. 필요하지도 않은 아이템을 이것저것 비교했다. 머릿속은 화장품 성분과 가격 대조로 가득 찼다. 구린 감정들이 밀려나는 순간이다.
그래도 어쩐지 찝찝하다. 헬스를 하고 난 뒤에 느꼈던 그 개운함이 없다. 지갑이 얇아져서일까. 에휴. 아침부터 느낀다. 오늘 하루가 참 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