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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Nov 10. 2023

 너의 길을 가는 너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보자

오늘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딸아이를 따라나선다. 2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이가 학교에 혼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역시 나갈 채비를 한다. 함께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는다.

대신 학교 가는 길 도중 횡단보도에서 다정히 인사하고 헤어진다.

곧바로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아침마다 작년에 입학한 딸아이를 바래다주고 공원으로 다가서면 엄마에서 ‘걷는 사람’이 된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으로 사색할 수 있는 선물의 시간이 허락된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천천히 걷기를 시작한다.

같은 곳을 매일 가도 다른 느낌이다.

공원은 항상 바쁘게 움직인다. 1년 365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낙엽이 수놓은 운치 있는 공원은 한창 옷을 갈아입기 바쁘다.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변해가는 공원은 열정적인 모습이다.     


어느새 공원 내 물놀이터 근처를 돌아 나오는 길이다.

유독 색이 진하게 물든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이 나무를 봤었나?, 왜 이리 아름답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가느다란 밑줄기가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이리 가느다란 밑줄기에 수많은 큰 가지와 잔 가지들 속에 단풍잎들이 어떤 모습으로 매달려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무 아래쪽 공간 속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봤다.     


분명 빨갛게 변한 단풍잎을 상상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빛을 받지 못한 아래쪽 잎들의 색깔은 아직 가을을 완전히 만나지 못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전부 물들어 버린 줄 알았는데 정작 나무의 밑쪽에는 연한 노란색과 연둣빛 그 사이 어디쯤인 잎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 순간 학교에 간 아이가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유독 키가 커서  항상 나이보다 한 두 살 위로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고작 9살인 아이한테


 너 이제 애기 아니잖아!
이제 이 정도는 너 혼자 할 수 있잖아!
너 이제 다 큰 거 아니야?
아직도 엄마를 찾으면 어떡하냐?

등의 말로 아이한테 상처를 줬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이의 겉모습만 눈에 들어오니 훌쩍 커버린 겉모습만 보고 다그쳤던 순간들.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 안에 숨겨진 아이의 마음(내면)을 보지 못하고 매번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

언젠가는 제 스스로 물들고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재촉하게 된다.

천천히 제 속도로 가다 보면 언젠가 너도 진한 가을의 색처럼 물들어 가고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겠지?


오늘도 넌 너의 속도로 너만의 길을 가고 있는데 매 순간 재촉했던 옹졸한 엄마의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아이의 보이지 않는 내면이 힘들 때 옆에서 때로는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될 것을 굳이 앞서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일부러 그런 건 분명 아니었지만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오늘따라 한없이 부끄럽다.


이따가 아이를 만나면 힘껏 안아주고 말을 해야지.



“학교에서 잘 놀다 왔어? 우리 저녁 먹고 공원 산책 갈까?”




덧붙임) 1년 전 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써놓은 글이다. 때마침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으나 발행 버튼을 누를 자격을 얻지 못했다. 결국 재재도전 끝에 초겨울에 합격을 하고 발행 시점을 놓쳤다. 1년이나 묵힌 글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용기 내서 발행해 본다.


사진 출처 : 직접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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