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팝콘이 흩날리는 벚꽃길을 함께 거닐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주말 동안 가족을 위해 온몸의 에너지를 탕진하고 난 후 다시금 에너지 충전을 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가족 이외에 그 누구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코로나 시절에는 더욱더 우리의 만남이 간절했다.
윤슬이 비치는 눈부신 날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나란히 호수 공원을 누볐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걸음 하나까지도 소중했다. 건강한 두 다리로 이렇게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유난히 아무 이유 없이 축 쳐지는 날에도, 창밖에 내리는 비로 나가기 귀찮은 날에도 몸을 일으켰다.
앞뒤 없이 지금 갈 테니까 나와 한마디 툭 내던진다. 그리곤 몇 분 후 서로를 마주했다.
오늘따라 비가 오는 날, 한창 더운 날 우리가 자주 갔던 그 건물 8층에서 창가를 바라보며 함께 마셨던 커피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립다.
꽃들이 수를 놓고 녹음이 절정인 지금의 이 계절을 함께 나눌 벗이 없다는 게 한없이 서글프다. 가을도 아닌데 다시 쓸쓸해진다.
언제든지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만난다. 만나서 폭풍 수다를 쏟아낸다. 때로는 아무 말없이 그저 찻잔을 어루만지며 눈빛만 주고받는다. 서로 한 곳을 바라본다. 서로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투명했고 투영했다.
너를 앞에 두면 네가 빛이 되어 내 모든 것들이 녹아내렸다. 너라는 사람은 내 속에 보이지 않은 긴 터널의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결혼하고 외로운 낯선 도시에서 남편과 아래층 시댁 식구를 제외하고 만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휴직과 동시에 돌아갈 곳을 잃은 육아의 세계에 입문했을 당시 아이와 함께 덩그러니 둘만 남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인정하지 싫었지만 산후우울증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었다. 그 오랜 우울감과 외로움을 이겨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그 친구는 내 딸보다 6살 많은 쌍둥이를 키우고 있었다. 육아 선배이자 멘토인 친구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함 그 자체였다. 쌍둥이 육아는 그 무엇을 생각하던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애 키우는 엄마라면 다 알 것이다. 친정과 시댁이 전라도와 경상도인 그녀가 멀고 먼 경기도 북부에서 쌍둥이를 키워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키워낸 대단한 그녀다. 내공이 보통이 아닌 친구다. 그 친구가 바로 내 친구다.
지방 출신인 우리가 경기도 북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내가 사는 옆 도시에서 네가 살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이렇게 애 엄마가 되어서 우리가 그때보다 더 진한 우정으로 똘똘 뭉치게 될 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인연은 천운일까? 행운일까? 아니다. 이건 정해진 운명이라 믿고 싶다.
네가 있어서 더 외롭지 않고 덜 외로웠다. 너는 나만의 고민 상담소였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였고 삶의 안식처였다.
작년 8월, 이미 2년 전에 먼저 낯선 땅을 밟은 남편 곁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탄 그녀와 엊그제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을 표현했다. 외롭다는 말을 했다. 서로의 빈자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언제 오냐고 괜한 질문을 몇 번이고 던졌다.
너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다시금 열정을 쏟아내는 중이라 했다. 나 역시 글동무들을 만났고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전했다. 방금 전 널 만나고 왔는데 깜빡하고 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처럼 통화를 했다. 진짜 방금 만나고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몇 년 뒤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아마 어제도 만났고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은 1도 없을 것이다. 감추고 싶은 흰머리와 늘어난 눈가의 주름을 보면서도 여전히 그대로라며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 쉼 없는 폭풍 수다가 휘몰아 칠 것이다. 그래, 우리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수다 떨며 함께 늙어가자. 친구야! 빨리 돌아와 줄래? 여기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게! 지금 여기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맘껏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덧붙임) 여자는 나이 들수록 찜질방과 친구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 말의 참뜻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다행히 집 근처에 대형 찜질방까지 있으니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