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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03. 2023

매해 같은 곳으로 당일캠핑만 갑니다.

우리 깜냥에 1박 2일은 꿈도 못 꾸죠

비가 오는 건 괜찮지만 100%에 가까워지는 우리 집 습도는 견디기 힘들다. 지하 100층에서부터 전해오는 구축 아파트 1층의 습함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차라리 쨍쨍한 날씨의 무더위가 더 낫다. 게다가 습도보다 더 무서운 건 습도와 함께 급상승한 40대 아줌마의 불쾌지수다. 며칠 째 맘껏 외출도 못하고 습한 날씨에 돌밥 모드와 집콕 모드로 인하여 입에서는 숫자가 섞인 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새어 나오고 있다. 40년 넘게 뼛속 깊은 곳에 내재된 짜증까지 폭발하기 일보 직전, 다행히 주말에는 날이 좋아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귀에 쏙 들어오는 동시에 머릿속에 생각나는 그곳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다.


주말이 다가오니 집 안에 가득했던 습함은 서서히 물러갔다. 신께서 선사한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 속에 그동안 쌓인 짜증도 함께 지구 밖으로 날려버리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 중이다. 불혹을 넘긴 후부터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주말 내내 그냥저냥 하루종일 나무늘보 태세로 한없이 늘어질 때가 많아졌다. 이번 주말도 그냥 이대로 흘려보내 버릴까? 하면서도 이렇게 무의미하게 주말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현아! 내일 약속 있어? 없으면 우리 내일 거기나 갈까? 비도 많이 왔고 날이 너무 좋다. 내일도 좋을 것 같은데?"

"언니, 마침 우리도 내일 뭐 할까 고민했는데 잘 됐다. 그럼 내가 지금 가서 장 볼 테니 언니가 나머지 준비해 줘!

"그래, 그럼 서로 준비하고 나서 다시 통화하자. 내가 캠핑장 사장님께 전화해 놓을게!

"오케이! 내일 11시에 거기서 봐"


짧은 통화 후 두 여자의 행동이 빨라졌다. 두 여자는 각자의 집에서 익숙하지만 황급히 모든  짐을 철저히 챙긴다. 여름 시즌에는 물놀이 용품까지 챙겨야 하니 짐이 거즌 두 배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자정이 다되도록 짐과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 와중에 엄마들만 호들갑을 떨고 아빠들은 여전히 소파와 한 몸인 채 티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행히  친척보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네와 함께 놀러 간다는 말에 기분 좋아진 주현이 딸과 덩달아 신이 난  우리 집 딸은 본인들 스스로 놀잇감을 챙기고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주현이와 나는 대학 동창이고 남편들은 동갑이지만 다같이 만날 때만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낸다)



당일치기로 가는 거 맞아? 어디 피난 가냐?
 뭔 짐이 이리 많아?


출발 직전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남편의 볼멘소리에도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빠진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며 오히려 틈새에 화장지와 물티슈 여유분까지 더 쑤셔 박는다.

남편은 그제야 제 할 일을 시작한다. 짐 옮기기, 그리고 운전.

얼마 전부터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뚫렸다. 운 좋은 남편의 일하는 시간이 10분 이상 단축되었다. 평소보다 여유롭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캠핑장 사장님께 올해도 다시 만나 반갑다고 정중히 인사드린 후 물가 자리 근처로 평상을 배정을 받는다. 온 뒤라 그런지 역시나 물놀이하기 딱 좋은 우리만의 힐링 장소는 여전히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반겨준다. 지금 당장 물에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짐부터 내려놓자.


양쪽 집에서 가져온 짐을 평상에 내려놓고 테이블과 의자를 그늘 진 자리에 펼친다. 부르스타와 불판, 냄비와 각종 집기류, 아이스박스에 담긴 음료와 고기를 확인하고 식재료들을 박스에 구분해서 진열한다. 분명 점심과 저녁 2끼분이고 오늘 하루만 쉬다 갈 건데 왠지 내일까지 버틸 있을 정도로 짐이 한가득이다.

마지막으로는 배정받은 사이트에 여자 아이들 2명이 쉴만한 깜찍한 원터치 텐트하나를 1분 만에 설치한다.

일이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된다. 빈 속에 슬슬 배가 고파질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서두른 건 사실이다.


 캠핑 가면 몇 시간씩 세팅을 하고 준비하는 도중 잠시 쉬면서 라면을 먹거나 맥주 한 캔 마신다는데 그건 딴 세상 이야기다. 우리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 바로 당일 캠핑 시작이다.

(전 날 저녁 급하게 야채와 재료 손질을 다했고 새벽부터 6명이 먹을 밥에 반찬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온 주현이와 나)


"고기 어딨어? 바로 구우면 되는 거지?"


앉자마자 고기부터 찾는 남자는 우리 집 남자다. 몇 년째 캠핑장에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렸던 남자가 최근에 스스로에게 막중한 업무를 부여했다. 식사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는 게 눈치가 보여 언젠가부터 제 손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한 착한 남자다. 한번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 보통 세 시간 넘도록 미동이 없다. 고기 굽는 데 최선을 다하느라 땀을 쭉쭉 빼면서도 물속에 풍덩하지 않는 남자다. 어쩌다 삘 받아서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게 되면 누구 하나 그 앞에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가끔씩은 불쌍해서 내가 그 자리를 지켜주곤 하는데 듣다 보면 참으로 지루하기 그지없다. 뻔한 군대와 주식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급하다는 이유로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면 어느새 조용해진다.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낮잠까지 숙면을 취하는 남자는 저녁 먹기 전에 다시 눈을 뜬다.



"잠깐 들어갔다 와도 되나?"


수영복 차림으로 캠핑장으로 온 한 남자가 짐만 황급히 내려놓고 사라지기 일쑤다. 일행 중 유일하게 흡연자인 이 남자는 종종 자리를 비운다. 다 큰 어른이라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어른 남자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큰일 난다. 예전에 같이 놀러 갔을 때 바다에서 혼자 수영하러 들어갔다가 본인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려 갈 뻔한 적이 있는 남자다. 그 집 아내도 맨날 딸자식 만만치 않게 큰 아들 걱정을 더 많이 한다. 짐을 놓고 한 남자가 고기를 구우려고 자리를 잡는 그 찰나, 나머지 한 남자는 눈치를 보며 스리슬쩍 자리에서 일어선다. 수시로 없어지는 남편을 찾느라 그 집 아내는 오늘도 좌불안석이다. 어디 있나 한참을 찾는다. 어느샌가 벌써 계곡물에 혼자 풍덩해서 유유히 스노클링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조금 뒤에는 아이들과 함께 잼나게 물놀이를  해주는 수영에 진심인 순진무구한 남자다. 


결국 애들도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난리를 친다. 엄마들은 밥은 먹고 들어가야 한다고 애들을 진정시키며 상 차리기에 정신이 없다. 엄마들은 짐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쉴 틈이 없다.  점점 밀려드는 아이들의 항의에 큰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일찌감판을 벌리고 고기 굽는 남자의 빠른 손놀림 덕분에 생각보다 고기가 빨리 익었다. 어찌 알고 그 타이밍에 온몸이 젖은 남자가 수영복을 쥐어짜며 자리에 앉는다. '오늘 물 좋은데?' 하면서 고기 굽는 남자와 함께 잔을 부딪히며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본인들 입에 먼저 넣는다.


<고기 구워 주는 남자와 애들과 같이 물 놀이 해주는 남자가 함께 하는 당일치기 캠핑 / 작년 여름에는 장마가 끝난 후 바로 가서 유독 물이 좋았다. >

고기 굽느라 손가락이 열일을  한 남자는 점심을 먹고 난 후  자연 속에서 숙면에 들어갔고 나머지 한 남자도 애 둘과 수영을 하다 지쳤는지 원터치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살짝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애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둘이서 꽁냥꽁냥 슬라임과 종이접기를 하면서 엄마를 찾지 않는다.


드디어 점심 먹은 것을 대충 치우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저녁 식사 준비 하기 전 여유시간이다.  엄마들에게도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자연 속에서 코 고는 소리를 배경으로 엄마들의 수다타임이 펼쳐졌다.

언니, KG오빠는 고기라도 굽지, 진짜 내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한다. 자기가 놀러 온 거 같아. 물놀이가 저렇게 좋은가? 본인이 제일 신나 하는 것 같아. 나이가 먹어도 왜 이리 철이 안 드는지 몰라.
주현아! 그래도 KB씨는 애들이랑 같이 물놀이라도 해주잖아. 고기만 구우면 뭐 하냐? 물에도 안 들어가고 애 하고 놀아주지도 않는데, 저럴 거면 그냥 집에서 자는 게 낫지?
딴 사람들은 캠핑 가고 밖에 나와서는 다들 남자들이 한다는데 이 두 남자는 왜 이리 일을 안 하는 거야, 밖에서도 다 언니랑 나랑 다하니까 우린 밖에서도 힘들다.
전생에 우리가 나라를 팔아먹었나 봐. 너랑 나랑 잘 못 고른 걸 누굴 탓하냐? 그러니까 2박은커녕 1박 2일도 안 가지. 우리가 캠핑 와서 몸살 걸릴 일 있냐? 원터치라 다행이지, 저렇게 일을 안 하는데 누가 그 큰 텐트 치겠냐고? 그렇다고 설거지를 하냐? 아니면 음식을 하냐?
우리가 X고생 안 하려면 당일치기가 딱이야. 애들 데리고 같이 온 게 어디냐? 우리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자.
긍게~, 괜히 비싼 텐트 장비 샀다가 우리 애아빠는 설치하기도 전에 물에 들어갈걸? 캠핑 고수들은 덥다고 여름에 캠핑 안 다닌다잖아. 우리 애아빠는 여름만 기다리는 사람이야. 물놀이만 좋아하니까 그런 으리으리한 장비 필요도 없어. 스노클링만 있으면 될걸? 언니 말이 딱이야. 우리가 고생 안 하려면 당일치기가 낫다. 우리 그냥 다음번에도 당일로 여기 오자. 여기 너무 좋다!


이곳은 해 전에 우리 식구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가 무작정 산속 끝까지 직진해서 우연히 알게 된 산속 캠핑장이다. 인심 좋아 보이는 사장님께 공손히 부탁드리며 아무 준비 없이 왔다고 당일로 놀 수 있는지 물어봤던 캠핑장이다. 그게 인연이 되어 매년 꾸준히 여기로만 다녔다. 당일로만 다녀서 그런지 마땅히 더 좋은 다른 곳을 알아보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곳은 자연경관까지 아주 빼어난 장관이기에.



몰라서 못 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한번 와본 사람은 계속 올 수밖에 없는 마법의 캠핑장으로 몇 년 사이 소문이 쫙 퍼졌는지 이제는 몇 달 전부터 예약이 꽉꽉 찬다고 하셨다.

올봄에 갔을 때 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북적거리고 시설도 좋아졌다. 예전에는 별로 보이지 않던 대형 캠핑카부터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텐트와 장비들이 거의 모든 사이트를 채우고 있었다.

가끔씩 삐까뻔쩍한 장비를 보면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이 좋은 곳에서 며칠 동안 먹고 쉬고 자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내 눈앞의 두 남자를 마주하면 금세 생각이 바뀐다.

그 뒤로도 여러 번 누군가의 입에서

'우리도 본격적으로 캠핑 다니게 장비 한번 사볼까?' 말이 나온 적은 있지만  호응은 없었다.   



올해도 우리는 달라진 게 없다. 비가 온 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무계획 속에 시간이 맞으면 두 식구는 그곳에서 만날 것이다. 화려한 텐트 장비 속에서 최신식 구이바다가 아닌 오래된 부르스타와 고기불판, 스텐 냄비와 깜찍한 원터치 텐트 하나 던져놓고 2끼만 겨우 챙겨 먹고 와도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두 남자와 네 여자가 함께하는 당일치기 캠핑은 올해도 그곳에서 계속될 것이다.(몇년 째 변함없는 삼겹살과 라면도 함께♡)





덧붙임) 그래도 가끔씩은 사장님께 장비를 빌려서 캠프파이어까지 하고 온 적도 있습니다. 1박 2일과 별다를 게 없는 꽉 찬 당일치기 캠핑입니다. 참고로 캠핑장 비용도 1박 2일 치 똑같이 지불하고 옵니다.


사진출처 : 캠핑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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