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토스트와 스시, 가정식
어제 잠들기 전 동생과 약속했다. 아침에 기상 알람을 맞추지 말자고. 둘 다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실컷 자고 싶었다. 나는 별 일 없는 주말이면 늦게까지 잘 수 있지만 동생은 아직 어린 조카 때문에 이른 아침에 깰 수 밖에 없었다.
둘 다 피곤하긴 했는지 뒤척이지 않고 깊게 잠들었지만, 나는 어제의 다짐이 무색하게 9시 즈음 눈을 떴다. 더 오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의 노예로운 루틴이 몸에 새겨졌나보다. 그래도 동생은 평소보다 많이 잔 듯 너무 행복해했다. 단 하루였지만 최근까지도 그 늦은 아침 하루의 달콤함에 대해 언급한다. 아무리 작은 행복이라도 이게 행복이라고 명명하고, 곱씹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지난하고 고된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치트키. 나는 이런 명명하는 작업에 익숙하지는 않은 편인데,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조금씩 체화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걸 말이나 기록으로 내뱉으며 더 강화하면 좋겠다.
아침을 먹기 위해 긴자에 위치한 토스트와 커피를 파는 디저트 카페에 갔다. 일본에서는 이런 음료나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음식점을 킷사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클래식함이 느껴지는 외관. 밖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없어 기뻐하며 들어갔는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줄이 늘어서있었다.
계단 한칸 한칸씩 1층의 테이블과 가까워지며 배고픔과 기대감이 함께 상승했다. 우리는 바 자리로 안내 받았고, 토스트 세트와 애플파이를 주문했다. 짙은 나무 소재의 인테리어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풍경은 약간 흐려 따스함이 필요한 오늘의 날씨와 아주 잘 어울렸다.
커피를 주문하면 앞의 바에서 유니폼을 차려입은 점원이 바로 앞에서 드립커피를 경건하게 내려준다. 커피 하나 내리는 일에 저렇게 정성을 다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드디어 내가 주문한 커피를 건네 받을 차례. 점원이 한 손엔 커피 주전자, 다른 한 손엔 우유가 담긴 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우유를 얼마나 첨가하고 싶냐는 질문에 30% 정도라고 답했더니, 찻잔에 커피와 우유를 절묘하게 부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커피가 더 부드러워지는 걸까?
정성으로 전달된 커피는 전형적인 일본식 커피의 맛이 났다. 따지자면 맘에 드는 편. 애플파이도 예전 할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계피향이 강하게 나서 좋았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마치곤 쇼핑 타임. 뉴발란스, 오니츠카 타이거, 화장품 매장들, 여러 매장이 곳곳에 모여있어 반드시 사지는 않더라도 둘러보기 좋았다.
디저트 류를 파는 가게에는 가을이라 밤이 한참 철인지 입간판이나 데코레이션 등에 밤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꽃집들은 호박을 활용한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슬슬 점심 때가 되니 배가 고파졌다. 이번 여행에서 먹고 싶었던 메뉴 중 스시가 있었는데, 일단 백화점에 있는 가게는 어느 정도는 다 맛있지 않을까 싶어 미츠코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점심 시간은 약간 비껴난 시간이라 대기를 걸어두고 잠시 앉아있자니 바로 카운터로 안내한다. A la carte 세트 상품도 있고, 먹고 싶은 종류를 하나씩 고르거나, 자기에게 일임해도 된다고 하는데 생선 이름을 일본어로 알지는 못해서, 10피스 정도 내에서 알아서 맛있는 걸 골라주길 부탁했다. 생선의 종류마다 가격이 매겨지는 듯 했다.
주문한 진저에일과 시작된 스시 타임. 처음엔 열정적으로 스시 하나하나마다 설명해주는 걸 받아적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중간부턴 포기했다. 몇 가지 아는 것-전갱이나 참치-은 알고 먹어서인지 더 맛있었다.
백화점 옆에 아이옷을 전문으로 파는 매장에 들렀다가 너무 귀엽고 예쁜 옷이 많아 지갑이 다 털릴 뻔 했다. 매장 외관에 전시되어있는 건 유니클로랑 크게 다르지 않아 방심했는데 태그의 가격을 볼 때 마다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한참 신나서 구경을 하다가 문득 동생은 아직까지 자신을 위한 건 하나도 안 사고 조카 것만 사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까 다른 곳에서 봤던 스니커즈를 고민하다가 사기로. 오랜만에 놀러온 여행이니까!
쇼핑백을 여행의 전리품처럼 몇 개씩 갖고 다니다보니 우린 또 지쳐버렸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내려놓고 건물 내 카페에서 잠시 카페인과 당을 충전했다. 몽블랑으로 유행하는 밤 시즌에 편승해보았다.
체력을 잠시 충전하고 도쿄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시간. 도쿄역을 둘러싼 빌딩숲엔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잦은 야근러의 측은지심이 동요했다. 다들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보고 싶었던 몇 개 브랜드를 빠르게 둘러보고, 저녁을 먹으러 킷테 건물에 왔다. 꼭대기 층의 조지루시라는 밥솥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밥집. 대기가 없어 선택한 것치곤 식사가 정갈하게 나와 썩 맘에 들었다.
주문할 때 밥 양을 고를 수 있었는데, 가운데 있는 양이 보통양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더니 가장 왼쪽에 있는 게 보통이고 우측으로 갈 수록 적은 양이었다. 밥 자체가 아주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지만 과식하는 느낌에 자제했다. 아주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평범한 식사. 이렇게 도쿄에서의 2일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