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디즈니씨 Part.1
오늘은 기다리던 디즈니씨에 가는 날. 내게 있어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참 할로윈 시즌이라 안 그래도 많은 인파가 더 몰리는 시즌이라고 하여, 한국에 있을 때부터 디즈니씨 오픈런 인파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려주는 계정을 틈틈이 보면서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았다. 블로그 글들을 보면 무조건 오픈런이라고 하기에 그 전 날 긴자와 도쿄역에서 쇼핑을 하면서도 계속 내일 몇시에 일어나야 하지, 우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오픈런을 할까 말까 등을 동생과 심심찮게 논의했다.
결론은, 일단 알람을 맞춰놓고 눈이 떠지면 가자! 였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한국인 두 명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기계처럼 움직여 도쿄역으로 향했다. 말은 여유롭지만 자꾸 발은 빨라지는 이상한 현상. 디즈니씨로 향하는 노선을 타려면 생각보다 도쿄역 안에서도 한참을 걸었어야 했다. 출근 인파와 맞물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역사를 뚫고 지하철 탑승, 디즈니 노선으로의 환승역에 가까워질수록 열차엔 흑백의 직장인은 조금씩 사라지고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남았다. 옷차림만 봐도 디즈니에 갈 사람과 아닌 사람이 구분되는 지경. 다들 가방이든, 악세서리든, 옷이든 어딘가에 디즈니 아이템을 하나씩 은근히 달고 있는 것이 귀여웠다.
예전에 디즈니씨에 한번 가봤던 동생은 기억을 더듬어 최적의 경로를 찾아냈고, 무사히 디즈니 리조트 노선으로 갈아탔다. 미키를 형상화한 손잡이와 창문이 눈에 들어오며 놀이공원에 가는 게 조금씩 실감이 났다.
디즈니씨 역에 도착하는 지하철 위에서 내려다본 대기줄은 걱정했던 것보다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주말에 이미 최대 인파를 찍고 어제 비가 오면서 오늘은 사람들이 조금 적은 모양. 할로윈 기간에만 디즈니 코스튬플레이가 허락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즌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정말로 여기저기 디즈니 캐릭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모두 기대로 가득차있었다. 오픈을 기다리며 전 날 편의점에서 사둔 에너지 드링크과 커피, 샌드위치로 간단한 허기를 달랬다. 전투에 임하는 자세에 가까웠달까.
디즈니씨에서 주목할 곳은 24년 초 개장한 가장 안쪽의 새로운 구역. 사람이 너무 몰리는 것을 막는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그 구역에 있는 네 개의 어트랙션을 탈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만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그 권한은 돈으로 사거나, 디즈니에 회원 가입을 하면 주는 특별 예매권을 사용하면 되는데,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티켓팅을 해야 한다고. (25년엔 대기가 가능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놀이공원 입장 전에는 아예 서버 접근이 안 돼서 반드시 공원에 들어간 후에 해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는 오픈런이 유리한데, 디즈니씨에 들어가자마자 분위기를 즐길 정신 없이 바로 티켓팅을 해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거다. 우리 또한 핸드폰에 코를 박고 치열한 티켓팅을 했고, 결국 따냈다. 네 개의 어트랙션은 피터팬, 겨울왕국, 라푼젤, 팅커벨. 동생과 나는 각자 피터팬, 겨울왕국 입장권을 얻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를 클리어했으니 이제 즐길 시간. 할로윈 테마로 곳곳을 꾸며둔 게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인기 있는 어트랙션엔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여러 테마를 가진 공간을 지나쳐 판타지 스프링스 구역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팝콘 부스가 있는데 내가 원하던 피터팬 팝콘통이 보여 바로 줄을 섰다.
팝콘을 다 먹고 나면 하단 바닥 부분에 전구가 있어 무드 조명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랜턴인데, 디즈니씨 정보를 찾으며 가장 갖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구매했다. 크로스로 맬 수 있는 리본도 달려있어 갖고 다니기 어렵지 않은 점이 좋았다. 약간의 바베큐맛이 나는 팝콘은 체력이 떨어지거나 입이 심심할 때마다 아주 요긴했다.
모두가 디즈니 머리띠나 소품들을 갖고 있었는데, 나도 이 분위기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고심 끝에 미키마우스의 마법모자가 달린 머리띠를 사서 장착했다. 동생은 이미 갖고 있던 미니마우스 머리띠를 착용했다. 이제 즐기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다.
입장 가능한 시간이 되어 판타지 스프링스에 들어왔다! 겨울왕국, 피터팬, 라푼젤 테마로 꾸며진 곳곳에 코스튬을 갖춰 입은 입장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러 명의 안나와 엘사가 무언가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있었는데, 흡사 아렌델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게 몰입감인 걸까?
우리의 가장 첫 어트랙션은 겨울왕국. 동생은 겨울왕국 안나의 팬이기도 하고, 자매의 이야기란 점에서 괜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해서 기대가 많이 됐다. 내부로 들어가며 꾸며진 곳곳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놀이기구는 배 같은 걸 타고 겨울왕국 서사를 따라가는 형태. 아주 잘 만들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아쉬운 건 스토리가 영화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감동은 크지 않았다는 것. 다른 시각의 이야기나 영화 이전/이후의 이야기도 좀 더 포함 됐다면 더 풍부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어트랙션은 피터팬. 의외로 굉장히 재밌었다. 기구를 타고 화면을 보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피터팬, 웬디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 났다.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에는 일부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나도 피터팬 증후군이었던 건지, 대학을 다니고 첫 직장을 들어가기까지도 마음 속 깊은 한 구석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있었다. 입시 준비에 포기했던 자유 분방 십대를 되찾고 싶었던 마음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져야하는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마음이 동시에 있었던 게 아닐지.
판타지 스프링스 내에는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몇 군데 있는데, 우리는 스너글링 더클링에 앱으로 메뉴들을 주문해뒀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는 바람에 레스토랑 앞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다가 입장 시간에 맞춰 들어가니, 점심시간이라 이미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빈 자리를 찾아 몇 바퀴를 돌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픽업대에서 내 주문번호가 보이면 확인 후 가져올 수 있다.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뜨거운 블랙 커피. 날이 궂어 조금씩 추워지고 있었는데 우선 카페인과 뜨거움으로 으슬으슬한 기운을 날려보냈다. 쫀득한 식감의 햄버거 번이 특이했는데, 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건지 노란 색이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그럭저럭 맛있는 편. 벌써부터 슬슬 체력이 부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