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끝에는 새로운 색이 물들고 있다.
떠나가는 차에 손 흔들어 주는 사람.
주말이면 바쁘다.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떠난다. 경기 남부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 곳곳을 다닌다. 지도에는 빼곡하게 가고 싶은 곳, 갔던 곳, 갈 곳 후보들이 표시되어 있다. 세어보니 700 곳 가깝다. 다니는 곳은 다르지만, 끝은 비슷하다. 그녀가 사는 곳에 내려 주는 엔딩.
주차가 어려운 탓에, 잠시 비상등을 켜놓고는 짧은 인사를 나눈다. 여자친구는 후다닥 내린다. 차는 출발. 내 눈은 사이드 미러와 룸 미러로 뒤를 본다. 여지없다. 내린 그녀는 차를 향해, 아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난 창문을 열고 손을 힘차게 흔들어 봤노라 한다. 작아서 표정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제야 집으로 들어간다.
차에 앉아 받은 인사에 배시시 웃게 된다. 그녀와 멀어질수록 생각 여럿이 교차한다. '고마움, 아쉬움, 궁금함..' 질문도 떠오른다. 내가 힘껏 손을 흔들어 답했다는 사실을 알까? 나처럼 아쉬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간다.
운전을 하며 고민해 본다. 표현에 박하던 내가 언제, 왜 변했을까? 인사에 고마워하고, 아쉬움을 표현하고, 쑥스럽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나. 고민은 정답으로 안내하지 못하지만, 단서를 꼭 남긴다. 언제부터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유는 알아차렸다.
물들었다. 그녀에게 물이 들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쉽지 않지, 변하긴 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실이 바로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시 한번 난이도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변한 내 모습이 꽤 괜찮을 때다. 그럼, 혼자만의 힘이 아닐 테다. 곁에 좋은 사람이 있고, 그들이 날 염색을 하고 있는 덕분이다.
유유상종. 쉽게 말하면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말을 탄생시킨 이야기를 찾아봤다. 제나라 왕은 고민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구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사람이 필요했다. 신하에게 명령했다. "인재를 찾아오시오." 명에 따라 출장은 간 신하는 얼마 뒤, 7명의 훌륭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왕은 물었다. "귀한 사람을 일곱 명이나 어떻게 데려왔는가?" 신하는 웃으며 말했다. "본시 같은 류의 새가 무리 지어 사는 법입니다. 인재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아 자기들끼리 모이는 법입니다."
똑똑하니까 함께 있는 걸까? 함께 있으며 더 똑똑해지는 걸까?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씨름이 여기에도 있다. 날 보니, 함께 있기에 좋은 모습으로 변했다. 타인을 공감하고, 작은 일에 행복하며, 고마워하는 사람이 된 건, 오롯이 그녀 덕분인 것처럼. 사람이 쉬이 바뀌지는 않지만, 물들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이에게 감사하다.
고민이 여기까지 미치니, 그녀에게 묻고 있는 일이 많다. 그녀도 자신이 보기에 참 좋은 색으로 물들었는지. 나로 인해 변했는지. 무슨 이유로 늘 손을 흔들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함께 하고 싶은 말, 함께 하고픈 말이 많아졌다.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마음 끝에는 새로운 색이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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