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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

시간은 결단코 이별을 만들어 낸다.

by Starry Garden
부모님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


눈물겨운 단어가 있다. "엄마, 아빠."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쓴다. 같은 이를 이르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은 판이하다. 단어에 감정과 경험이 찐하게 다르게 녹은 덕분이리라. 세상에 태어나 우는 일로 자신을 표현하던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우는 단어가 엄마 아빠다. 그때부터다. 배가 고플 때 울며 엄마를 찾고, 어디가 아플 때 울며 아빠를 찾는다. 가장 오랜 시간 날 돌봐 달라며 말하는 단어가 바로 엄마 아빠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전등이 깜박거린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스위치를 끄고 켜길 반복한다. 불편하다. 아빠를 찾는다. 그럼 해결이다. 그는 슈퍼맨이다. 넘어졌다. 피가 난다. 엄마에게 전화한다. 첫 마디부터 안다. 어머니는 하던 일을 다 내팽개치고 와서는 괜찮은지 보살펴주신다. 그럼 해결이다. 그는 원더우먼이다.


이제 다 컸다고 착각하는 고등학생. 인생이 결단 날 시험이라 오해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부한다. 다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짜증만 든다. 고3이 벼슬이다. 엄마도 아빠도 아마 시험을 함께 치르셨을 테다. 시험을 보는 날, 아빠와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뭐가 무섭냐. 너 뒤에 아빠랑 엄마가 있는데, 걱정 마!" 나보다 더한 내 편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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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공부를 더하겠노라 했을 때. 엄마와 아빠는 응원해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스스로를 따갑게 자책하셨다. '집에서 지원을 했으면...'이라는 문장이 부모님을 쿡쿡 찔렀다. 박사를 받고 직장을 다녔다. 열심히 했고, 날 다 태웠다. 멈췄다. 그땐 정말 내 뒤에 있는 부모님에게 기댔다. 다시 일어설 때까지 아무 말 없지 지원해 주셨다. 아빠와 엄마는 비빌 언덕이다.


지난 몇 년을 짧은 문장으로 적으면서도 울컥한다. 엄마와 아빠에 눈물이 스며있는 건, 무조건 내 편, 조건 없는 희생 때문이다. 생각은 번진다. 그럼 아빠랑 엄마는? 엄마와 아빠는 고아다. 무조건 내편을 들어주시던 부모님이 없다. 나처럼 눈물겨울 그 단어를 쓸 수 없다. 가끔 엄마는 웃으며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고, 가끔 피곤한 얼굴로 설날이 되면 아빠는 엄마가 보고프다고 하신다. 부모님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


"시간은 결단코 이별을 만든다."


나도 언젠가 고아가 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필연이고 운명이다. 거스를 수 없는 일을 극복하려는 순간 비극이 찾아온다. 나도 언젠가는 부모가 되어 부모님이 보고플 때가 있을 테다. 50대, 60대가 지나도 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크게 없다. 그냥 자주 불러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에 추억을 꾹꾹 눌러 담을 뿐이다. 기회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늦었을 때가 진짜 늦은 때가 된다. 전화를 건다.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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