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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13. 2022

제사 없는 명절 준비: 튀김 편

늘 하던 거라.

늘 하던 거라.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명절에 흔히 볼 수 있는 튀김이나, 나물을 어김없이 준비하신다. 장을 볼 때 매번 따라가지만, 이번에는 궁금증이 따라왔다. "왜 하실까?" 의문을 가진채 시장으로 향했다.


제사 없는 명절 준비의 시작


명절에 뺄 수 없는 고기, 해산물, 과일을 잔뜩 샀다. 양손 무겁게 들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물건을 내려놓고 갈 수 없으니 마음이라도 가볍게 하자는 생각에 "왜 하실까?"라는 질문을 했다. 


"엄마, 제사도 안 하는데, 명절 준비는 왜 하는 거야?"


"늘 하던 거라. 20년간 하던 일이니까 안 하면 어색해서. 그리고 다들 명절 음식 먹는데, 우리만 안 먹으면 쓸쓸하니까."


어머니는 20년간 명절 준비를 하셨다. 번뜩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바로 미움. 어린 나는 작은 어머니들과 고모들이 미웠던 게 생각났다. 우리 어머니만 일하는 것 같아서. 명절 준비라는 중노동에서 이제야 벗어나셨지만, 다시 하신다. 


제사 없는 명절 준비: 튀김 편


제사에서 벗어난 명절 준비는 기준이 달라진다.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준비하면 된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튀김은 제사 기준이 아니라 우리 입맛으로 선정되었다. 새우, 오징어, 고구마, 호박이다. 그리고 기름에 굽는 것도 있는데, 두부, 명태 그리고 생선이다.


튀김 재료 준비

어머니는 명태도 새우도 호박도 고구마도 손질을 끝내셨다. 손이 빠른 어머니다웠다. 부엌이라는 전장의 지휘관은 노련하게 지시를 내리신다. "물이 충분히 빠진 오징어, 새우에 밀가루를 묻히도록." 나는 베테랑의 지시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였다.


밀가루와 튀김가루


튀김은 4단계를 거쳐 맛있게 거듭난다. 

밀가루 묻히기 => 물에 푼 튀김가루에 몸 담그기 => 튀기기 => 기름 빼기로 나뉜다. 

튀김가루를 함에도 밀가루를 하는 이유는 재료가 가진 물기가 뜨거운 기름에 들어가면, 의도치 않은 폭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오징어, 새우 튀김


재료에 따라 튀기는 시간은 다르지만, 노련한 어머니는 튀김의 상태를 보며 뒤집고 꺼내길 반복하신다. 마지막 단계인 기름 빼기는 구체적으로 두 개의 단계로 나뉜다. 우선 주방용 건지기에서 충분히 기름을 빼곤 키친타월로 이동한다. 기름을 빼면 바삭함만 남는 튀김이 비로소 완성된다.


기름 뺴기 단계


제사 없는 명절 준비: 굽기 편


명태와 두부 그리고 생선은 굽는다. 명태는 이전의 튀김과는 다르게 계란을 푼 물에 묻히는 단계가 있는데, 바로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함이겠다. 두부는 물을 충분히 빼고 소금을 쳐 잠시 재우곤 기름에 굽는다. 마지막으로 생선은 가자미와 볼락을 구웠는데, 철저히 가족의 기호를 맞춘 선택이었다.


제사용 생선은 대가리가 있는 반면, 제사 없는 우리 명절에는 대가리가 없다.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은 버리는 곳 없이 바쳐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에 대가리를 버리지 않지만, 우리는 제거한 후 굽는다고 어머니가 설명하신다. 그런가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노릇한 튀김도 구이도 완성되었다.


구워지고 있는 명태, 두부, 생선




두 시간 남짓 명절 준비 1차전이 끝났다. 양도 가족이 먹을 양이라 적었고, 종류도 우리 기호에 맞게 하느라 많지는 않았다. 20년간 어머니는 어떤 명절을 준비하셨을까? 양도 종류도 많은 튀김을 준비하는 분명 고된 일이었을 테다.


튀기며, 구우며 연신 맛있다고 외치는 나. 즐겁게 드시는 아버지. 나 보다 높은 텐션을 보이며 먹을 동생. 이 광경이 어머니에겐 고된 일을 기꺼이 할 이유였나 보다. 어머니의 마음이 소쿠리에 한가득 담은 튀김이 보기 좋다.


"어머니 진짜 맛있어요. 올해는 제가 도움이 된 거죠?"


모둠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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