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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Sep 18. 2022

아버지께서 자연인이 되고 싶은 까닭

1 kg에 330만 원짜리 고사리.

1 kg에 330만 원짜리 고사리.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신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시청 시간은 길어지시고, 곧 내려가리라는 다짐도 잦으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퇴하시고 귀촌을 준비하시거나, 이미 내려가신 분도 왕왕 있으시다. 다들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추석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공조 2: 인터내셔널>을 보기로 했다. 시간은 동생 가게가 문 닫는 오후 8시 이후. 우리 가족은 오후 7시 30분에 동생 카페에 모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귀촌 준비하시는 친구분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 친구는 땅을 사셨다고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곧 내려갈 땅을 놀리기는 싫으셨기에 무엇이든 심어야지 싶어 고민을 꽤 하셨다고 했다. 당첨된 건 고사리. 서울에서 가끔 오갈 테니 관리가 쉬운 작물이라 선택하셨다고 한다. 친구는 시작할 때 아버지에게 내가 수확하면 원 없이 고사리를 먹게 해 주겠노라고 장담하셨나 보다.


1,000평의 밭을 가득 채우기 위한 고사리 씨앗의 가격은 1,000만 원. 가끔 간 밭이 관리가 잘 된 턱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아버지 친구 손에 들린 고사리는 3 kg였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노루 때문이라고 한다. 고사리의 싹이 조금이라도 올라올라치면 노루가 다 먹은 탓.


친구는 위로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놀리셨다고 한다. 조금만 달라고. 친구는 나도 아까워서 냉동시켜놓고 가끔 꺼내 만 본다고 하신다. "너한테 줄 게 없다." 우리 가족은 그 아저씨가 떠오르며 잠시 같이 웃었다. 이야기하는 아버지도 즐거웠고, 우리 가족도 한바탕 웃었다. 이야기 끝에 나는 한마디 붙였다. 


"어우 1 kg에 330만 원짜리 고사리는 못 먹겠다고."


자연인이 되고 싶은 까닭


<가치 들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창옥 교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목은 <내 남편이 '자연인'을 본다면 '이것'을 의심하라!> 영상을 요약하면 다음 정도겠다. 자본주의에서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평가받는다. 때가 되면 평가받던 위치에서 은퇴하게 되는데, 곧 상실을 의미한다. 상실과 함께 남자는 무력해진다고 한다. 그러기에 떠나고 싶어 한다. 평가받지 않는 곳으로. 은퇴하는 사람을 사회적 위치가 아닌, 존재 자체로 존중해줘야 한다로 결론짓는다.


감창옥 교수의 이야기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이유도, 귀촌에 대한 이야기가 잦은 신 것도 어렴풋이 알게 했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의 귀향은 아마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평가받는 상황 속에서의 탈출이고,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건 평가를 하지 않던 시절로의 회귀이다. 탈출과 옛날로 돌아가는 길은 귀향일 테다. 


혹시 나는 아버지를 그 존재 자체로만 인정하고 존중했던가? 

재미있던 이야기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 옮아갔다. 오늘은 아버지와 이야기해야겠다. 이것이 존중하는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바둑 한판 두실래요? 이 영화 재미있던데 같이 보실래요? 아버지랑 있는 게 재밌네요." 

"가시더라도 멀리 가진 마세요. 아버지랑 있는 게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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