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
질문이 있다. 혹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형제가 몇 분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한발 더 나아가 우리 부모님의 할아버지는 어떤가? 아시는 분도 잠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고민을 해도 몰랐다. 이번에 글을 쓸려고 이야기를 듣던 중 내가 모르는 어머니의 가족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는 아래와 같이 가계도를 그려봤다.
어머니 가계도
가계도를 그리며 깨달은 또 다른 건 호칭은 참 모르고 익숙해지기도 어렵다는 사실. 누구를 기준에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한 분이라도 여러 가지 호칭을 가지기도 하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부르시던 호칭이 달랐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했다.
호칭은 주인공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적는다.
어머니의 호칭은 '밝은 달' 또는 그녀로 한다. 필명을 가지고 싶다던 어머니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정했다.
가계도에는 어머니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형제의 호칭을 적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누나는 그녀에게 고모가 될테지만, 가계도에서 아버지를 기준으로 누나 또는 여동생으로 적어놓았다. 그녀를 기준으로 호칭을 적으니 형제가 몇 명인지 헷갈리고 마음에도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관계도에는 간단히 적었다.
적고 나니 참 모른다는 말이 자주 그리고 절로 나왔다. 주인공인 그녀는 3남 3녀 중 넷째시다. 그녀의 아버지는 3남 2녀 중 장남이시고, 할아버지 형제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아마 그녀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2남 4녀 중 장녀이다. 여기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다는 이야기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얼마 안가 재혼을 하셔, 3명의 자식을 낳으셨다고 했다. 매주 이야기를 하며 기억의 집 여기저기를 자주 간다면, 가지 않던 방에서 새로운 정보가 나와 가계도를 업데이트할 수도 있겠다.
등장인물들의 정보는 중요한 사건이 시작하는 시점마다 설명하기로 하고, 그녀의 탄생으로 가보자.
"그녀 태어나다! 그리고 첫 기억은 바로.."
["응애"라는 소리와 함께 유성 하나가 하늘을 가른다. 그리고 지나가던 묘한 분위기의 스님이 엄청난 아이가 태어났어 라며 삿갓을 잠시 들어 하늘을 본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 9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 내용이다]와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는 없다. 다만 경남 김해시 OO동에서 태어나셨고 태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녀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더 이상 알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는 태어난 곳에서 15년을 살았다고 한다.
"첫 질문은 지금 기억나는 가장 어린 시절은 무엇인가요?"였다.
기억의 다락방 구석구석을 뒤적거리셨는지 질문에 즉각 답을 하시지 못하셨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생애 최초의 기억을 말해주셨다.
먼지를 털어낸 그 기억의 조각에 그녀는 8살이었다.
그녀의 첫 기억은 부모님과의 먼 외유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하는 출타에 그녀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밖을 가더라도 투정 부리지 않고, 얌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빠와 언니에게 치이고 동생들에게 관심을 빼앗긴 안쓰러운 모습에 대한 아버지의 보상이었을까? 그녀에게 소풍 같았던 그날이 생애 최초의 기억이었다.
그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면 출타의 행선지는 경북 밀양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1970년대 아직 도로 사정은 열악했을 것이고, 계속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약 6시간 만에 아버지의 고향 밀양에 도착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버스만을 탄 것이 아니라 달구지도 탔다는 것이다(어머니 달구지라뇨.??).
결혼식은 그 마을을 떠들썩하게 한 모양이다. 마을 초입부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듯 소란스러웠다. 아버지의 고향을 증명이라도 해내듯, 마을 초입부터 만나는 사람이 모두 지인이다. 그들과 오랜만에 인사하며 결혼식장을 찾아 가셨다. 그들 모두 그녀에게 "많이 컸구나", "네가 '밝은 달'이는구나"라며 아는 척을 했지만, 그녀는 그저 아버지 다리를 잡고 앞으로 갈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천막을 치고 여기저기 앉아 술을 마시는 소란스러움과 고소한 전 냄새가 퍼져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하는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 뒤만을 졸졸 좇아 다녔다.
잔칫집 순회를 마치신 아버지는 그녀를 신부대기실(?)에 넣으시곤 "여기 언니 옆에 있거라"라며 친구들을 향해 걸어가셨다. 그 당시 결혼식의 법도였는지 알 수 없으나, 손님이 신부대기실에 누군가가 올 때마다 신부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인사를 해야 했다고 했다. 치렁치렁한 온갖 장식을 지고 있는 신부가 참 힘들었을 테다. 많은 형제에서 가운데에 태어난 이들은 눈치가 빠른가 보다. 그녀는 신부를 눈치껏 도와주었다. 그녀는 신부가 목이 마를까 물을 가져다 놓기도하며, 화장실 가는것을 돕기도 하고, 요기가 될만한 것을 챙겼다. 어린아이의 도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지만, 신부는 어린 그녀에게 참 의지가 되었나 보다. 그러니 그녀가 어딜 갈라치면 신부가 잡았다고 한다. "아기씨 어디 가시지 말고 옆에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 그저 남편만을 믿고 따라온 그곳에서 의지할 것은 없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꼬박 하루간을 신부 옆에서 지냈다. 그 당시 오가는 시간이 무척 기니, 결혼식도 하루에 끝나지 않고 2~3일은 했나 보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떠날 준비를 하셨다 한다. 다시금 먼길을 떠나는 '밝은 달'을 신부는 그저 바라만 봤다고 한다. 그녀도 신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렸던 '밝은 달'은 신부의 외로움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인사를 하지 않던 신부의 태도에 갸웃뚱 할 뿐이였다. 신부의 조용한 헤어짐은 아마, 시댁 식구 앞에서 눈물부터 흘리면 흉이 될까 해, 의지한 조그마한 아이가 가는데도 울음을 참느라 아무런 말 못 했을 것이다. 아마 마음으로 '잘 가거라,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되뇌었으리라.
아버지와의 외유 그리고 새 신부와의 기억이 그녀의 첫 기억이었다. 그녀에게는 소풍이었을 테고, 신부에게는 조그마한 도움이었을 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 어머니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생애 최초의 기억을 여쭤보길 바란다. 이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그날의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참 모르고 있었다.
그대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자세를 갖추고 질문을 던져보자.
그럼 지금의 부모님이 아니라, 그 당시의 부모님의 한 조각을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녀에게한 질문
1. 당신의 가족은 몇 분이신가요?
2. 태몽은 무엇이였나요?
3. 당신의 생애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