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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28. 2022

박사(博士)의 '박'자는 얇을 박(薄) 자야

박사과정만 마친 사람. 일에 정통한 사람.

박사(博士)의 '박'자는 얇을 박(薄) 자야


연구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파일럿 플랜트*를 운영할 기회가 있었다.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 새로운 공법(工法)이나 신제품을 도입하기 전에 시험적으로 건설하는 소규모 설비. -두산백과-


환경공학에서 새로운 기술이 실험실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는 잘 운영되다가 규모가 커지면 여러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실, 자주 있다. 거기다, 연구실에서 얻은 실험 결과들 만으로는 본격적인 설비를 제작하거나 건설할 때 필요한 자료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실험실과 큰 현장의 중간 단계인 파일럿 플랜트를 운영하곤 한다. 


화학공학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파일럿 플랜트 단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환경에서는 고려할 수 있는 사항과 그렇지 못한 사항이 혼재하여, 시뮬레이션 인자로 넣기가 어렵다. 또 생물학적 처리가 끼여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시뮬레이션이 실제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환경공학에서는 보다 자주 파일럿 플랜트 단계를 거친다.


파일럿 플랜트 운영 6개월 동안 기기 문제, 운영상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하나의 문제는 다른 문제를 낳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물론 목표 수질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연구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박사님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기기를 고치 기도하며, 추가 공사도 했다. 그렇게 얇은 얼음 판을 걷 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2개월간 문제 해결에만 매달렸다('페르마처럼 지면이 좁아 글로 옮기진 않겠다.'라는 멋있는 말을 남기며.. 그 과정을 여기선 생략하고자 한다. 브런치는 지면 제한이 없다는 게 함정.. 언젠가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겠다).


그때 참 우쭐했던 모양이다.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안정적 운영에 돌입한 그 파일럿 플랜트를 가던 지도교수님이 한마디 하셨다. 


"박사의 '박'자는 얇을 박(薄) 자야." 웃으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박사가 된다고 해서 아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학습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정도지."



박사과정만 마친 사람 vs  일에 정통한 사람.


박사(士)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대학원의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규정된 정차를 밟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학위.
2.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1번의 박사는 그저, 학위를 받아낸 사람일 뿐이며, 2번 박사가 진정한 박사처럼 보인다. 진정한 박사는 자신의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물론이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찾고 적합한 대안을 내어 놓는 일련의 과정이 숙달된 사람이다. 그래야만 그 분야에서 정통한 박사라 할 수 있다.


그때 내가 우쭐한 건 1번에 다가갔기 때문이다. 파일럿 플랜트의 결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수 있는 데이터를 모았다는 마음에 우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정으로 내가 박사가 되어 간다고 착각을 한 내 모습을 보던 지도교수님은 얇을 박(薄)을 말씀해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은근한 조언을 하셨나 보다. 


그때의 나는 겨우 문제의 발견부터 해결까지의 하나의 꺼풀을 겨우 해낸 것이었다. 진정한 박사라는 건 끊임없는 노력이 기반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대학원에서 규정한 절차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한 꺼풀 한 꺼풀 쌓은 분들도 진정한 박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교수님의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맛이 난다. 그리고는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우쭐거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며, 박사학위가 없지만, 진정한 박사인 분들을 보면 절로 고개를 숙인다. 





박사를 했다고 우쭐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학위만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진정한 박사인지 한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정말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정한 박사인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말이다. 그리고 학위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이 있다면, 진정한 박사로 우린 그를 인정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학위 문제가 아니다. 그대도 그대의 분야에서 진정한 박사로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라는 자문이 필요하다. 


충분한 노력을 한 후  언젠가 나는 지도교수님께 여쭈고 싶다. 


"이제는 제 박사의 박자가 얇을 박(薄) 자가 아니라 깊을 박(博)이지요?"

그럼 아마 이렇게 답하실 것 같다. "아직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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