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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Mar 09. 2023

600년 전, 그는 전주에 왜 은행나무를 심으셨을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일.

전주에서 만난 600년 된 은행나무.


여행을 떠났다. 바로 전주. 여행을 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문화재. 문화재에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 간다면 알기 어려운 이야기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전주에 있다. 바로 관광해설투어. 내 마음을 잘 읽어주시는 여자친구께서 링크를 하나 보내주셨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게 됩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해설 투어 경로와 시간이 있는 표. 찬찬히 보다 하나를 정했다. 


"한옥마을 골목길 투어"


그냥 지나갈 수 있던 돌 하나, 물줄기 하나가 가진 이야기를 알게 되니, 공간이 참 다르게 다가왔다. 기억에 남은 곳은 '600년 은행나무' 앞이었다.



거친 마지막 숨결을 내고 있는 고려와 새로운 기운을 들이마시는 조선이 탄생하는 시점이다 그때 최담 선생이 있다. 깊은 병을 가진 고려를 한 사람 의지로 고치긴 어려울 테다. 숨었다. 그렇게 세상을 등지려 전주에 내려왔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세상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조선이 그를 불러 세웠고, 그는 응답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쓸모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다시 전주로 내려왔다. 자신이 겪고 깨달은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터를 구하고 나무를 심는 일. 그가 심은 나무가 임진왜란도, 6.25 전쟁도 피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문화 해설사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찬찬히 보고 있었다. 다음 장소로 안내하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눈을 뗄 수 없어 가만히 있는 사이, 여자친구가 한마디 하고 후다닥 가버린다.


"난 600년 나무 정기받아 간다! 빨리 와 가야지!"


고개를 가웃 하고 바라보니, 천천히 호흡을 세 번 하면 나무 정기를 받아 간다고 한다. 멀어지는 여자친구의 등을 쫓을지, 나무 정기를 받을지 고민하다 그녀를 따라갔다.


"같이 가!"


전주 한옥 마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일.


은행나무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화석" 멀디 먼 고생대. 대 멸종 기를 견뎌낸 몇 종 안 되는 생물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참 오래 산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3,500년이 넘는 은행나무도 있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되기 위한 나이도 400년은 넘어야 한다고 한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오래 살 수 있는 만큼, 열매를 맺는 일도 더디다. 결실을 맺으려면 15~20년의 세월이 필요한 나무다.


그럼 최담 선생은 인생 말년에 은행나무를 왜 심으셨을까?


바로 다른 이를 위한 일이었을 테다. 자신이 알게 된 지식을 후배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남기듯, 은행나무도 후배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심었을 테다.


그는 사라지고 책 속 문장으로 남았지만, 그가 심어둔 나무는 지금까지 많은 자손들이 즐기는 장이 되었다. 더울 때는 그늘을, 수확 계절에는 은행이라는 열매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잎으로 말이다.


지금 나도 나를 위한 일이 아닌, 미래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 우선 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겨 본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라며.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라며.


뒤를 돌아보며 재빠르게 세 번 숨을 쉬어 본다. 은행나무와 최담 선생님의 마음을 내 몸에 기억하기 위해.



한 줄 요약: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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