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마동석 팬이다. 그가 나온 대부분의 영화를 보셨다. <범죄 도시 3>가 최근에 개봉했으니, 당연히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한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영화관 나드리를 하자며 말을 꺼내고 싶었다. 우리 집은 무엇이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영화관 나드리를 제안 나에게 가족은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난 "그냥"으로 말했다.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전화한다. 오늘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한번 볼 수 있는지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한참을 한다. 어떤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를 끊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꼭 물어본다. "왜 전화했어?" 그럼 난 "그냥"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독립 서적을 위한 행사가 크게 열였다. 이제는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 나간다기에, 과자 몇 가지와 음료를 포장해 준비했다. 신중하게 과자를 고르고, 동생 가게에서 포장을 했다. 아는 분들보다 몇 개 더 준비했다. 여유 있게 준비해 고생하는 작가님들에게 전하리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참을 준비하던 동생이 "왜 하는 거야?"라는 물음에 난 "그냥"이라고 답했다.
곰곰 생각하니, 난 자주 '그냥'이라는 말을 했다.
큰 그릇의 단어가 있다. 단어가 하나의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 사람에 따라 그릇에 넣는 의미가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넣는 의미가 다르다. 나에게는 큰 그릇의 단어가 '그냥'이다. 그냥에 참 다양한 의미를 담아 넣는다.
<범죄 도시 3>를 가족에게 보자고 말하며, 함께 하고 싶다는 민망한 마음을 '그냥'에 넣었다.
친구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전화하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궁금한 마음을 '그냥'에 넣었다.
신중하게 과자를 고르고, 포장을 하며 불모지인 출판세계를 지켜가는 작가님들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그냥'에 넣었다.
민망하기에, 부끄러움이 있기에, '그냥'에 의미를 넣어 그들에게 전한다. 큰 그릇에 의미를 담다 보니, 넘친다. 참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나에게는 '그냥'인가 보다. 오늘도, 그냥이라는 그릇에 담긴 마음을 꺼내본다. 이제는 그냥에 숨지 말고, 말해야겠다. 용기 한 조각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