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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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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04. 2023

전 쭉 뻗은 나무보다 구불구불한 나무가 좋습니다.

그늘을 만들어 줄 테니까요.

전 쭉 뻗은 나무보다 구불구불한 나무가 좋습니다.


  산책을 자주 나간다. 걷는 명상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을 시끄럽게 하던 소리들도 걷다 보면 잦아들고, 발아래만 보던 눈은 고개를 들어 푸르른 잎을 보게 된다. 여름 산책은 생명의 힘이 느껴져 참 매력적이다. 덥고, 습한 기운이 내 산책을 멈출 수는 없다.


  화창 날씨, 산책을 나섰다. 빛은 따가웠지만, 습하지 않았기에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했다. 걷다 보니 나무를 보게 된다. 자주 가는 산책길이지만, 자세히 보니 낯설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쭉 뻗은 나무가 줄 서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잎과 가지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음 소리를 떠나, 백색 소음에 집중하게 된다.

 

  다시 걷다 보면, 구불구불한 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곳을 마주한다. 거친 삶을 살아온 것일까? 구불구불한 나무가 모인 그곳은 쉬이 지나가지 못한다. 그들이 만든 그늘에 잠시 머물다 간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참 좋은 곳이다. 의자가 하나 놓여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있게 된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가느냐.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많을 때, 크게 돈다. 평온한 마음이 있다면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들 아래에 한참을 서있다 가곤 한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선택을 미루고 그늘 아래에 있었다.


  글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덕분일까? 쭉 뻗은 나무와 구불구불한 나무가 눈에 확 들어왔다. 휙 지나온 쭉 뻗은 나무, 한참을 머문 구불구불한 나무. 두 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바람을 따라 불어왔다 불어 나간다.


  쭉 뻗은 나무는 기운이 넘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곳을 보지 않고 한 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나와 비슷한 나이에 높은 성취를 이룬 이들이 우뚝 서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도 생각나고, 먼 곳에 있는 스타와 기업인들도 떠오른다. 목표를 향해 일했던 지난날이 바람처럼 왔다 물러갔다. 쭉 뻗어 가는 길에 그들은 옆에 있는 나무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목표를 향해 가기 때문일까? 옆으로 크기 못해 그늘은 자그마하다.


  구불구불한 나무는 온갖 역경을 극복해 거칠다. 높게 가지 못하고 옆으로 자라난다. 시련이 그들의 마음을 꺾기게 하고, 고통이 몸을 구겨 놓았다. 죄절하며 목표를 바꾸기도 한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찬란한 지점에 가진 못하고 옆으로 자라났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그들은 옆으로 옆으로 자라났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진 못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겪은 경험이 마음을 크게 한 모양이다. 그들의 큰 마음이 그늘을 만들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집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 구불구불한 나무를 괜히 돌아본다. 그늘에서 쉬고 가게 해준 그들에게 고맙다. 난 지금 쭉 뻗어가는 길을 멈췄다. 대단한 성과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찬란한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가끔은 마음을 구겨놓고, 시련에 가지는 꺾을 질 테다. 그런 나무가 되는 일도 꽤 괜찮아 보인다. 내가 겪은 고통과 시련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그늘이 될 테니 말이다.


  집에 가 시원한 물을 한 잔 먹고, 글을 써야겠다. 나무를 응원하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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