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Jun 07. 2023

난 독립운동가 되긴 틀렸다.

무임승차를 그만하려고요.

난 독립운동가 되긴 틀렸다.


갈 곳 없는 눈을 두기에 참 좋은 텔레비전. 멍하니 흘러가는 소리와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짧은 영상이 눈을 잡아끌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라 한다. 참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큰 행사장에서나 들어 볼만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는 전형적이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단어의 나열이 멍한 눈을 흐릿하게 한다. 짧은 영상이 끝나고 기억 파편이 재생되었다.


난 대학원 생활을 꽤 오래 했다. 근로자 정체성 절반, 학생 정체성 절반인 대학원생에게 주말이란 없다. 나만 없는 건 아니고 나를 지도하던 교수님도 없으셨다. 여느 주말처럼 교수님과 나는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격조 높은 연구 대화는 없고 교수님의 야단이 담긴 이야기가 길어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이 말을 멈추게 했다.


"누가 개념 없이 여기에 주차를 해."


그가 소리친 곳을 좇아 향한 곳에는 삐뚤게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주차한 비장애인 차량이다.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번호에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거센 된 소리를 내며 통화를 마치고 차 앞에 서있다. 차 주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달리는 소의 기세로 뛰어나와 전화한 이와 부닥친다.


몇 번의 큰 소리가 오갔다. 논리에서 패배한 차 주인은 침을 탁 뱉고는 차에 오른다. 의기양양한 그는 카페로 들어간다. 지켜보던 교수님은 무례한 그들에게 한 마디를 하리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생각과 어긋난 문장이 나왔다.


"저 사람들이 독립 운동가가 되는 거야. 너나 나나 독립운동가가 되긴 틀렸어."


이야기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근 일이 연결되어 재생된다. 우리 집 막둥이인 몰티즈 희망이 와 산책하면 서다. 같은 지역을 산책한다. 물론 방향과 순서를 다르지만. 갈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차 한 대가 있다.


장애인 표시는 있으나, 주차 불가라는 붉은 경고가 붙어있는 딱지를 가진 차가 떡하니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고 있다. 난 못 본 척한다. 순간만 모른 척하면 쉽게 잊힌다. 그러다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으며 지나간다. 따끔 거리는 마음이 진정하라고 합리화라는 녀석이 내 귀에 속 사귄다.


"네가 성내고 해결하려고 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그냥 모른 척 해."


교수님 말씀이 맞다. 난 독립운동가가 되긴 틀렸다.


무임승차 그만하려고요.


불의를 보고 지나간다. 누군가 해결하리라 믿는다. 또, 내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생각하며 마음을 토닥인다. 막상 해결하려고 든다면, 귀찮은 문제가 나에게 오리라는 위험도 있으니까. 나에게 당장 피해가 없다면 눈을 감고 만다. 순간만 참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 나서서 고쳐나간다. 자신에게 온 위험과 귀찮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노력한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바뀌고, 아무런 기여를 한 바 없는 나는 이익을 공유한다. 난 염치없이 무임 승차하고 나아진 세상을 즐기고 있다.


불편한 마음마저 모른척하고 만다. 지금의 우리나라도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으리라.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용기를 내어 투쟁한 이들. 그들의 힘은 여전히 남아 우리 곳곳에 퍼져있다. 조그마한 불의도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서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으니 말이다. 떠오르던 생각을 멈췄다. 흐릿하던 눈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늦은 밤 분리수거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