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Jun 20. 2023

진상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

다시 주세요.

진상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


  아버지의 기침이 길었다. 가족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병원으로 모실 수 있었다. 동생과 내가 아버지를 모셨다. 호흡기 내과에 접수를 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월요일 아침 병원은 다른 날 보다 사람이 많다. 주말 내내 아픈 몸을 참고 있다 병원이 열길 기다렸다 오신 분으로 북적거렸다. 아픈 몸 때문일까? 주말 내내 기다렸기 때문일까? 병원 대기실은 날카로운 분위기가 스멀스멀 차올랐다.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느리게 가는 시계 때문에 예리한 기운을 나도 더했다. 연거푸 시계를 보다 고개를 드니, 간호사께서 이름을 부른다. 의사 선생님은 오신 김에 CT 촬영과 폐기능검사를 하자하신다. 결과를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다시 기다리는 시간. 앉을자리 없이 대기실이 가득하다.


  검사실로, 진료실로 사람이 오갔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예민한 기운을 눌러내기 위해, 정신을 놓고는 멍하기 있었다. 날카로운 기운이 차오르는지도 모르는 채. 예리한 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소리는 원무과에서 들려왔다. 


  "다른 병원보다 비싸. 급도 낮은 병원이 왜 이렇게 비싸?"


  짧은 문장으로 시작되었지만, 진상임을 알았다(이제부터 이분의 이름을 진상이라고 하자). 간호사를 향한 외침은 계속되었다. 문장만 조금씩 바뀐 반복된 이야기.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한 병원의 문제,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 주지 않는 간호사를 향한 비난, 전문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의료진에 대한 욕, 의미 없는 검사로 등 쳐 먹는다는 말. 온갖 이야기에도 간호사는 담담하게 절차를 진행했다.


  절차의 끄트머리에는 영수증이 있다. 진상은 영수증을 곱게 받지 않았다. 일부러 흘린 것인지 던진 것인지, 영수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진상을 바라봤고, 난 입이 달싹거렸다. 자신이 승리했다 여겼을까? 진상이는 몇 마디를 더 하려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때, 영수증을 줍은 간호사가 입을 뗀다.


  "영수증 받으시고, 저한테 다시 주세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진상을 뭐라는 거라며 얼결에 영수증을 받아 들고는 여러 차례 되묻는다. 간호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주시라는 말을 하니, 진상을 당황해 영수증을 건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진상이는 나가며 욕을 퉤 하고 뱉고 나간다.  


  세상에는 진상이 참 많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모두 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고 진상이 없다면, 거울을 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진상이 없는 곳은 없다.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자신이 갑이라 생각으로 무례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당한 -당한 일이 있기나 한지 싶긴 하다- 일에 대한 권리를 찾아야만 한다는 신념에 사로 잡힌 것일까? 그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을 모두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다. 나도 언젠가 그 진상과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생 가게에서 진상이 가끔 출몰한다. 커피맛을 가지고 일장 연설하는 분도 있고, 판매용을 당당히 사용하고, 당연히 무료로 쓰는 것이 아니 나며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판매하는 책을 자신의 책처럼 꺾어 읽고 다시 판매하기 어렵게 하는 일도 있다. 난 그들을 만나면 어찌해야 할까? 그들처럼 화를 내야 할까?

  

  간호사님께서 내게 단서를 남겼다. "진상에게는 약한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게 해야 한다. 무례하지 않게 요구해야 한다." 당당한 모습이 난 약자가 아니다, 라 말한다. 예의 없이 대하라고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음을 알린다. 예의 갖춘 모습으로 난 당신과 다름을 보여준다. 간호사님은 꺾기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예의를 갖춰 자신을 보호했다. 


  아버지 검사가 끝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에 안심했다. 의사 선생님은 단호한 말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경고를 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나오는 길에 간호사님이 떠올랐다. 마음으로는 그분에게 응원을 보냈다. 꺾기지 않는 마음에 격려를 남겨두고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있는 Darkest hou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